뉴비가 베테랑이 되기까지
일 년 만에 하와이로 돌아오는 길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출국 전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출국 당일 하드카피로 된 음성 결과서를 수령해서 공항직원에게 보여줘야만 비행기 탑승은 물론 이후 현지에 도착해서도 자가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 주 정부에서 지정한 병원 다섯 군데(강북삼성, 신촌 세브란스, 인하대, 인천공항) 중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은 잠실 근처에 위치한 아산병원이었다. 집 앞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무료 선별 진료소가 있는데도 13만 원이나 되는 돈을 내고 멀리 와서 검사를 받으려니 속이 쓰렸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세상 한적하던 인천공항 - 코로나 때문에 정말 별 풍경을 다 본다
여차 저차 해서 음성이 나오고, 결과서를 무사히 수령하고, 하와이 공항에 내려 입국 심사를 거치고, 23킬로그램짜리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 반이었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부터 실감이 나긴 했지만 막상 하와이 도착해서 숙소에 캐리어를 밀어놓고 침대에 대자로 눕고 보니 와 이제부터 다시 또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구나 싶어 눈물이 주르륵 났다. 아니, 사실은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부터 눈물은 계속 났다. 그 재밌다는 Tenet이 기내 영화로 나오는데도 집중은커녕 주책맞게 흐르던 눈물.
유학이 이렇게 외롭고 고된 싸움인 줄 알았더라면 난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유학 와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은 분명 크지만, 가끔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먼 곳까지 와서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이 고생을 하나 싶어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업 자체도 힘들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하고 또 그렇게 내가 한 모든 걸 오롯이 혼자서 뒷감당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것에 멘붕이 온다. 아, 말하고 보니 이건 유학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홀로서기를 아직 하지 못한 나의 미성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장 한국에서 부모님 품을 떠나 독립을 해도 자잘한 세금과 온갖 비용, 사소한 것에서 힘든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건 타국에서 하다 보니 그 모든 문제들 플러스 고민과 어려움을 공유할 지인들이 현저히 적고 혹 있더라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소연하는 건 한계가 있다 보니 '아유 내가 이거 영어로 말하고 있을 시간에 그냥 명상을 하지' 싶을 때가 많다. 결국 독립+외로움이 더해져 유학생의 힘듦은 배가 된다.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 멋진 풍경을 보고 있어도 마음이 어려우면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 있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전-전-전인 인생
알고 있다. 뉴비가 베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연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왜 이 세상에 쉬운 싸움은 하나도 없는 걸까. 직장도 다녀보고 학교도 다녀보고 나니 결국 열쇠는 마음가짐, 멘탈관리에 있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정말 내 마음 상태가 어떻냐에 따라 어디서 무얼 하든 그곳이 천국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인 관계, 업무 문제, 학업 문제, 뭐 정말 문제란 건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통제할 수도 없고, 이번에 이 코로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잘 대비해도 오직 신만이 아시는 상상치도 못한 변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상황을 통제하기보단 (=상황이 좋길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통제하는 비법(=내 마음이 좋아지게 하는 비법)을 아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걸 퇴사할 때도 몰랐고 유학을 시작할 때도 몰랐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몰랐다. 완전히 다른, 그래서 마치 평행세계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머나먼 미국 땅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출국을 일주일여 앞두었을 때부터 수시로 눈물이 나면서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순간이 많았다. 막 도착한 어제도 그런 나날들 중 하나였다. 허기가 졌지만 장거리 여행에 지쳐 기력이 없었던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 더 어두워지기 전에 다녀오자 결심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것이 주는 안도감
그런데 참 우스운 일이다. 그래도 코로나 전에 잠깐 지냈던 곳이라고 마트가 어디 있는지 가는 길을 훤히 알고 있던 나는 막힘 없이 어느새 꿀렁꿀렁 걸어서 마트에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가는 길에 보이는 온갖 알록달록한 꽃나무들도 사진을 찍고 귓가로 들리는 새소리도 들으며 (신기하게도 하와이 새소리는 한국에서 듣던 것과 다르다 왜일까) 마트에 순식간에 도착했고 그 순간 확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여기 입학해서 생전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던 그날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그 기억! 그땐 심지어 마트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수저나 주방기기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갖고 온 과자 쪼가리와 국제학생처에서 나눠 준 빵을 먹으며 연명하고 있던 차, 조금은 우울해져서 여기 왜 왔나 현타가 온 채로 학과 사무실로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팝송이 바로 옆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왔던 거다. 모든 게 다 새로운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내가 잘 아는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느꼈던 안도감이란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라 또렷이 기억한다. 단지 노래 하나일 뿐인데도 그 목소리를 듣는데 앞으로의 일들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그래 1년 전에는 마트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처음 마트 갈 때 구글맵 보면서도 이 길이 맞나 한참을 헤매며 갔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집 앞 마트 가듯이 딴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길 잘 찾아서 가고 있네,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이미 여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기시감. 그리고 이어서 밀려오는 아주 약간의 안도감. "생각보다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마트 가는 길에 보았던 풍경들
세상은 뉴비에게 조금 더 친절하다
그리고 오늘 간 학생식당은 또 어떻고. 주말에는 캠퍼스 내 식당 중 한 군데만 돌아가면서 여는 터라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으로 가서 브런치를 샀는데, '여긴 처음 와봤다'는 내 말을 들은 직원 아저씨는 아빠 미소를 잠깐 지으시더니 오늘 나온 메뉴를 다 먹어보라면서 컨테이너에 가득가득 담아주시는 게 아닌가. (보통은 오늘 메뉴 중 몇 개만 골라서 담음) 다 담기엔 당연히 컨테이너가 작았는데 아저씨는 종이호일을 위에 깔더니 그 위에 한층 더 음식을 담아 주셨다(얼마나 많이 담았는지 컨테이너 뚜껑이 잘 안 닫힐 정도였다). 과일을 고를 때도 난 뒀다가 나중에 출출할 때 먹을 요량으로 오렌지만 하나 달라고 했는데, '아니야 이것도 달고 맛있어 이것도 먹어봐' 하시며 과일도 종류별로 다 싸주셨다. 마지막에 음료를 고를 때도 탄산수 하나 달라고 했더니 '이것도 가져가!' 라면서 두 개를 안겨주시던 아저씨. 쪼끄만 동양 여자애가 유학 와서 어리바리해 보이니 안쓰러워 보였던 건지. 뭐 여하튼 가까운 거리인데도 들고 오는 길에 무거워서 낑낑거려야 할 정도로 인심 좋게 담아주신 덕분에 브런치로 먹으려고 사 온 걸 저녁까지 두 번 나눠 먹었다.
종이 호일 아래 1층에는 밥과 닭고기, 소시지, 해쉬 포테이토가 살고요 2층에는 파스타가 삽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프레젠테이션 스킬'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발표에 관한 온갖 책들을 다 찾아 읽으면서 강의 계획서를 작성했었는데, 그 수많은 책들 중 공통적인 내용이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실수에 너그럽다'는 것이었다. 경기를 볼 때 김연아 선수가 미끄러지면 '잘됐다 또 미끄러져라!' 하는 사람이 있던가? '으악 어떡해! 담엔 더 잘해야 할 텐데!'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마음으로 열띤 응원을 보내는 게 대다수일 것이다. 그래, 세상은 서툴고 부족한 뉴비에게 조금 더 너그럽고 친절하다. 첫 방문이라 하니 3인분 같은 1인분을 포장해준 그 식당 아저씨처럼!
뭔가 대단한 걸 해내겠다는 각오 따위 버리고, 잘 해내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냥 최선을 다해서, 오늘도 내일도, 그저 나 자신이 되어 솔직하고 정직하게 임하련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도 아빠 미소를 지으며 우쭈쭈 해주는데,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모질게 굴면 안 되겠다. 케세라세라. 지금의 힘든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웃음 짓는 날이 얼른 올 수 있길.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뉴비들에게 우쭈쭈 하면서 멜론 하나 더 얹어줄 수 있는, 너그럽고 따뜻한 어른이 될 수 있길.
(개강 2주 남긴 유학생의 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