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8살, 퇴사

Feat. 여보 나 숨이 안쉬어져...

by 몽중인

올해로 서른여덟.

1988년 서울올림픽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나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1. 싫으면 못 참는 나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했고,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나는 고3, 수능 두 달 전 미술을 포기했다.

그 후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릴 적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탓일까.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장소는 견디지 못했다. 중2 때 수학선생님께 욕을 안 했는데 욕했다고 오해받고 아이들 앞에서 목 뒤를 수학책으로 둘둘말아 맞은 뒤,

나는 수업 시간마다 엎드려 잠을 청했고, 돌아온 건 수학 8등급이었다.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었다.


2. 기록과 만난 시간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기간제 사서와 사서교사 자리를 전전하다 우연히 공공기관 계약직에 합격했다.

노처녀상사의 계약직 차별을 이겨내다 전공을 더 살려서 특정직으로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기록이라는 학문을 만나면서 내 인생의 난이도는 한층 올라갔다.

홀로 돈을 모아 상경했고, 낮에는 은행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저녁을 굶어가며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지방사립대는 나혼자였다) 학문을 배우는 스펙타클한 1년이었다.

졸업 후 25%만 합격하는 시험에 통과했다.

이후, 준정부기관과 기술원을 거쳐 지자체 산하 공기업에 들어갔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6년뒤 번아웃이 찾아왔다.


3. 기록물관리전문요원, 그리고 현실

혹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는 직업을 들어본 적 있는가?

조선시대 사관처럼,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후대에 남기는 직업이다.

현대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INFP인 내가, 모든 기관 사람들을 지휘하고 교육하며, 타고난 기질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17년 자격 취득 후 9년간 기록전시회, 기관 창립 20주년 백서, 홍보영상, 장관표창, ISO30301 국제표준인증까지 경험했지만, 그 과정에서 하시모토 갑상선염, 거대근종 수술, 번아웃, 공황과 우울, 유산까지 겪었다.


4.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공공기관 특유의 구조와 권력관계, 끝없는 불필요한 업무와 성과가 아닌 인간관계 중심의 승진구조 속에서

나는 한계를 느꼈다.


유사산 후 돌아온 부서에서 팀장은 말했다.

“일로 잊으면 된다. 일을 더하면 잊혀진다.” 그 말이 얼마나 허무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심사원 분들이 임신 축하한다는 말씀을 건넬때, 유산한 엄마인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괜찮다고 먼저 가버렸다고 차마 말할수가 없어서 미소만 지었었다..


유산후에도 마음을 가다듬고 업무에 충실했고 1등 평가까지 받았지만 그에 대한 합당한 승진도 없었다. 오히려 보도자료에서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책임을 지라는 내게, 회사는 너무도 지독했다.

나는 ‘내가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두 달 전,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남편에게도 미안했지만, 더 이상 내가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과 숨이 안쉬어지는 증상이 나타나서 찾은 정신과. 중증 우울 판정을 받고,

입원 권유까지 받았다.


어느날, 남편에게 솔직히 말했다.

“자기에게도 정말 미안한데, 내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남편이 침묵끝에 말했다.

“그 정도면 그만둬.”

20번쯤 졸랐다가 안된다고 하다가 처음 듣는 찬성이었다.


5. 퇴사 후, 새로운 숨

지금도 나는 기록이라는 일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공공기관들은 너무 힘들었다.

이제 타로상담을 이어가며, 연극과 여행, 음식, 가족,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술 관련 예술 모임에 참여하며, 온라인 사무실 출근 방식으로 새로운 일상을 실험하고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

다시.


프롤로그 끝맺음: 다음 이야기를 향해

퇴사라는 선택은 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앞으로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조차도 모른다. 낯선 예술의 세계일 수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일 수도, 혹은 그동안 미뤄왔던 나만의 작은 꿈을 향한 첫걸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숨 쉬고, 느끼고, 살아갈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38살 내가 공기업을 떠나 찾은 진짜 삶과 행복을 향한 여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선택과 깨달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