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도 사진을 찍고 기록해 두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정 엄마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과일, 예쁜 것들을 진열해 두고 어린 남매의 사진을 남겨주시는 것을 좋아했다. 남겨져 있는 앨범을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짧게 기록이 되어 있다.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앨범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엄마의 육아일기를 자주 열어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가 얼마나 우릴 사랑하고 고민하는 엄마였는지, 잘하고 싶은 엄마였는지, 그런 엄마의 마음을 간직해 온 나는 지금 엄마과 꽤 비슷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매일 사진을 찍고 sns에 글을 올린다.
내 마음 같은 글을 읽을 때면 나도 글이 쓰고 싶어 졌고, 감정이 서툰 나의 마음을 꼬집어 내기라도 해주는 글을 만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다이어리와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을 오랜 시간 가지고 있었지만, 누가 볼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에 세세하고 오래도록 쓰지는 못했다. 매년 스케줄러라도 사던 20대의 나는 30대가 되며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고,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올려두던 블로그도 몇 년째 시작하지 못하고 미뤄두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에세이 같은 글을 남긴다거나, 언젠가 책을 쓰는 꿈을 갖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챙길 것들이 넘쳐나는 빡빡한 일상에 최소한의 시간과 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쫓다 보니 그 중심에는 분명히 책이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교집합이 생겨있었다. 여전히 소중한 그녀들이 추천해 준 글쓰기 수업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였고 벅찬 기쁨이었다. 잠깐이지만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끊임없이 써야 할 이유들을 매주 다정하게 알려주시는 작가님의 수업노트를 보며 나도 써야 할 타당한 이유들을 만들어 나갔고, 반대로 쓰지 않을 이유들을 이제는 찾지 못하게 되었다. 쓰지 못한 날에도 다시 쓸 수 있는 마음이 생겼고, 써야 하는 마음만이 남아있다. 오픈 채팅으로 참여하던 쓰려는 마음에 올렸던 글들로 한방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나에겐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성취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부터 여러 고비고비를 넘기고 있지만, 고비가 없는 삶 또한 없을 것이며, 그 와중에도 내가 쓰려는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큰 아이가 엄마는 꿈이 뭐냐는 물음에,
“엄마는 너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꿈이야!”
라고 대답했다가 된통 혼이 났다.
“아니, 엄마 꿈이요 엄마! 우리 말고 엄마 꿈이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같은 질문을 3차례 정도 더 받고 정신이 좀 들었다.
“아, 엄마 꿈은 글을 계속 잘 쓰고 싶어.”라고 답했다.
아이 질문의 의도는 본인은 특수(!)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은데 엄마가 혹시 같이 해 줄 생각은 없냐는 것이었지만, 덕분에 나도 이 나이에 꿈을 말해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꿈도 나의 꿈도 단단히 지지해 주는 글 쓰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