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여자의 운명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몸이 서늘해졌다. 송련은 지붕선이 만드는 정해진 범위의 사각 틀 안에서 거의 같은 자리를 맴돈다. 디졸브 효과를 계속 주며 송련이 집안을 배회해도, 마지막 장면은 처음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지붕 부감 샷이다. 보는 이에게 답답함을 넘어서 절망감이 온다. 진부자의 집안의 폐습은 사람이 죽고 미쳐버리는데도 끊어지지 않으며, 기괴하고 뒤틀린 세계는 여전히 견고하다.
풀샷과 익스트림 풀샷은 주로 인물들을 담는데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 초반에 클로즈업으로 송련의 눈물을 담는다. 하지만 남편과 다른 부인들과 투 샷이 잡힐 때는 대부분 두 인물 간 커다란 거리가 있고, 전경을 잡는다. 그건 집안의 가풍이나 법도가 사람보다 더 중시되며, 그 기형적인 세계 속에 인물들도 함께 뒤틀리며 생존해야하는 운명이 담긴 구도 같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샷들이 피사체를 정면으로 놓고 양 옆 공간은 항상 흐트러짐이 없다. 특히 송련의 방은 어느 곳을 비추든 전부 완벽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기에 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송련이 셋째부인 방에서 마작을 하고 있을 때 지붕 부감 샷이 한 번 더 나온다. 역시 완벽한 대칭구도였던 지붕 부감 샷이 그때부터 조금 틀어진 앵글로 잡힌다. 송련이 집안의 암투를 알아차리고 살아남기 위해 동화 되가는 복선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홍등이 모티프라면, 발을 이 영화의 지배소라고 말하고 싶다. 전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아직도 발이 중국에서 여성의 성적인 매력과 동일시되는 신체 부위로 통용되는 것을 안다. 진 부자의 집에서 역시 발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발이 편해야 남자를 잘 모실 수 있다는 진부자의 말처럼, 발 마사지를 받는 것은 먹는 문제, 하인을 잘 통솔할 수 있는 권력 등 생존권과 즉결된다.
처음에 송련은 연아를 껴안고 있었던 남편에게 화를 내고, 둘째 부인에게 가라며 소리를 지르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발마시지 소리는 송련의 방 안에서 계속 들려온다. 그 소리에 눈을 감는 송련과 홍등이 켜진 방 안에서 역시 같은 상상을 하는 연아의 모습을 교차편집한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다. 청각적인 요소는 익스트림 풀샷 처럼 직접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보는 이에게 추측하고 마음껏 상상할 여지를 훨씬 많이 남겨준다. 발 마사지 소리는 그래서 더 꽃가마를 타지 않고 가방을 혼자 들겠다고 했던 송련의 처음 모습과 욕망에 젖어드는 중반부 송련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다. 무대가 시작됐다는 걸 알리는 듯 한 음악도 인상적이다. 송련이 진부자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매산과 고의원의 밀회를 알았을 때, 홍등이 들어올 때, 시간이 경과함을 알릴 때 그 음악이 나온다. 또한 그 음악은 무표정한 송련의 감정 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매산의 노랫소리나 후반에 매산의 죽음에 자신이 일조했던 것을 알았을 때 송련의 방에서 들려오는 곡소리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장셴으로 보는 이를 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매산이 끌려가 지붕 위의 방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 송련이 문을 여는 것은 익스트림 풀샷과 소리로 처리한다. 피리를 불고 있는 비포와의 만남에서도 헤어질 때는 풀샷이 된다. 공리의 무표정하지만 밀도 있는 세밀한 연기 역시 훌륭했지만 패턴이 되는 장면이나 의상, 샷 사이즈, 소품 등이 이렇게 이야기로 치밀하게 와 닿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송련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뒤틀린 가부장적 세계와 홍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아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