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위기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한류 고유의 모습을 잃은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류에 가장 열광해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을 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류는 본연의 색채를 잃어간 것이죠.
한국 콘텐츠 전체 수출액에서 대(對)중국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달합니다. 그런데 돌연 한한령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드라마 방영도 취소되고, 한국 스타들은 광고 모델에서 교체되거나 방송에서 편집됐죠. 오래 전부터 중국 진출을 목표로 사전 제작 등을 진행한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는 더 큽니다.
하지만 단순히 중국이 한국 콘텐츠 공급만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가지 덫이 더 있는데요. 막강한 자본력으로 국내 콘텐츠 시장에 침투한 것입니다. 중국은 주요 제작사 등의 지분을 사들이고 직접 개입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드라마 위주였는데 이젠 음악, 예능 등 주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손을 뻗었죠.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해결할 수 있는데다가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쉬운 길이 열리면서 이를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덫에 걸리면서 한류의 주객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한한령이 시작되기 전부터 한류의 빛은 이미 조금씩 퇴색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전 제작이 이뤄지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중국인데요. 사전 제작은 장점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안정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열악한 제작 환경을 개선하는 의미도 크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처절하게 실패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되려면 중국의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심의 통과를 위해 중국의 입맛에 맞는 캐스팅, 스토리 등을 마구 집어넣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원작을 가져다 그대로 작품을 만들거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할 아이돌 멤버들을 무더기로 캐스팅 하기도 했습니다. 재미 그 자체를 추구하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포착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중국에서 인기를 얻을까’란 계산이 앞섰던 것이죠.
음악 쪽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돌엔 꼭 일부러 외국인 멤버들이 포함됐는데요. 주로 중국 멤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외국인 멤버를 넣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 또한 수많은 계산이 뒤섞였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잦은 불화와 탈퇴까지 더해져 결과가 오히려 나빴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중국의 ‘하청업체’가 된 것 같다는 얘기들도 흘러 나왔습니다. 또 한국보다 앞서 이 덫에 걸렸던 대만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대만도 중국 자본의 대대적인 공습을 받았었는데요. 중국은 대만의 제작 기술부터 인력, 회사 등을 모두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나선 돌연 철수를 해버렸는데요. 이 때문에 대만 시장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중국 자본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한령의 굴레에 갇힌 한류. 그러나 당장은 힘들어도 길은 분명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많은 업체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포스트 차이나’입니다. 차이나를 대체할, 차이나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지역을 찾는 것인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동남아, 중동이 대표적입니다.
동남아 시장은 콘텐츠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연평균 5% 성장하는 것보다 훨씬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 6개국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416억달러(약 46조원)로 전년보다 9.95% 성장했다고 하네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생활을 누리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 사용이 급증하면서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중국의 성장률은 앞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남아의 성장률은 2019년까지 매년 평균 9.58%를 유지할 전망이라고 하네요.
한국 콘텐츠에 열광적인 반응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콘텐츠 개발 및 제작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곳이 많아 외국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특히 이질적이지 않은 한국 콘텐츠를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예능 ‘런닝맨’ 등이 큰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 K팝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중동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동남아는 문화적 유사성이 높은 반면 중동은 한국 문화가 익숙치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한류를 가깝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중심적인 문화 때문인데요. 가족간의 예의와 화목을 중시하는 중동 사람들에게 ‘대장금’ ‘주몽’부터 ‘해를 품은 달’ ‘응답하라 1997’에 이르는 한국 드라마들은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죠.
중동은 콘텐츠를 자체 검열하는 지역으로도 유명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콘텐츠에 염증이 난 대중들이 좀더 개방적인 해외 콘텐츠를 찾고 있는 것인데요. 이같은 움직임은 이집트, 레바논 등에서 먼저 시작됐고, 이젠 보수적인 걸프 지역 국가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포스트 차이나 지역을 공략하는 방법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중동에선 많은 한국 콘텐츠가 불법 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게다가 TV보다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어둠의 경로’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를 따져보면 한류의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 볼 때도 ‘포스트 플랫폼’을 찾는 것이 필수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플래폼으로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국내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같은 OTT플랫폼에 공급하면 일일이 수출을 타진하지 않아도 콘텐츠를 넷플릭스 진출국 190여개 나라에 선보일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 드라마 등 세계 판권을 넷플릭스가 잇따라 사들이고 있는데 국내 제작사 측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국내 콘텐츠와 스타들을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이후 다른 작품 등을 수출하기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이죠.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직접 제작되고 있는 국내 콘텐츠들도 있습니다.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 ,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등입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 넷플릭스가 진출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이 지역에서도 OTT 서비스 사용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많은 전문가들이 OTT 플랫폼을 이용한 수출 방법을 추천하고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남아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남아판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아이플릭스’란 서비스도 등장했는데요. 최근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도깨비’, ‘푸른 바다의 전설’도 아이플릭스에서 방영됐습니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소개되면서 필리핀의 아이플릭스 가입자는 기존의 두배를 넘어섰다고도 하네요. 이런 분위기들로 인해 OTT 업체들이 한국 콘텐츠를 더욱 적극적으로 들여오고 싶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한 ‘포스트 한류’의 길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나라,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환경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노래와 스토리가 나오는 것일테니까요.
그래서 한류 2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우리 내면의 꿈틀대는 흥과 상상력을 또한번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한류의 주인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우리가 가야할 포스트 한류의 길입니다.
STEP 1. 꼭 기억해요!
*한류 20주년, 첫 출발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포스트 차이나
STEP 2. 더 알면 좋아요!
*OTT: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컴퓨터나 모바일로 동영상을 다운 받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즐기는 방법. 넷플릭스가 대표적. 한국 콘텐츠를 외국에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으로도 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