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하는 고민
Book review l <예술가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제프 고인스
*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예술가에 대한 미신이 많다. 소수의 천재만 예술을 해야 한다거나, 적당히만 예술적이어야 먹고살 수 있다거나. 이 책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미신을 거부하며, 예술가는 창조적인 삶과 부유한 삶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현재가로 약 500억 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듯이)
* 작가는 잘 나가는 예술가가 따르는 12가지 원칙을 사고방식, 시장, 돈이라는 관점에서 제시한다. 먼저 예술가는 굶어 죽을 것이라는 사고방식부터 바꾸고, 시장에서 인맥을 활용하는 법과 공개적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며,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Recommend to.
*예술 활동을 생업으로 고려하고 있는 사람
*예술적 활동과 상업적인 활동의 밸런스에 고민이 많은 사람(기획자, 사업가, 마케터 등)
*본업 이외로 좋아하는 창작 활동이 있지만, 예술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
*하나만 분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마음을 어떻게 나만의 무기로 연결하면 좋을지 고민이 있는 사람
예술가라는 말은 왠지 좀 멋쩍다. 누군가가 스스로를 예술가 혹은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종종 정수리가 가려워진다. 나의 예술가 알레르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에 더 많은 예술과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여기서의 예술가는 꼭 화가 나 음악가가 아닌, 조금 더 보편적인 사람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창조(창작)하는 재능으로 무언가를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창조 자체가 목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창조의 대상이 그림이든 가게든 회사든 상관없이 다 넓은 의미의 예술가 아닐까.
꼭 '예술가가 되겠어!'라고 심각하게 결심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겁을 많이 주다 보니(예술가? 입에 풀칠도 못하고 살고 싶니? 등), 이 창의적인 세계에 발을 담근다는 건 꽤 많은 사람들에게 무서운 일이 됐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에서 전해주는 '돈과 예술을 모두 잡는 12가지 원칙'은 때론 실용적이고 때론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준다.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영어로는 'starve'가 다소 과격하게 번역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배고픈' 정도로 해도 되었을 텐데.
모든 예술가에게는 고집이 있다. 사실 예술가에게 고집은 필요하다. 그 고집은 '그의 작품을 신뢰해도 되는 한 가지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공할 만큼 고집스러운 것이지, 모든 것에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고집을 올바른 것에 부리지 않으면, 그저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는 큰 그림을 놓치는 일이 된다. 특히 칭찬이나 비판을 사사롭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그렇다. 그렇게 되면 실패 하나하나에도 분노하고, 오히려 실수도 고집하며 반복한다. 지엽적인 것에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소속된 문학 친목 모임인 '잉클링스'를 연구하는 교수에 따르면, 소설 <반지의 제왕>의 92%가 수요일 밤에 쓰였을 거라고 한다. 톨킨이 목요일마다 친구들이자 예술가 동료들을 만나 현재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만약 작품은 혼자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주변의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한다면 분명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동료들은 고민을 듣기도 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계속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외부 자극제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나의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가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천재는 사람이 아니라 장소이며, 천재성은 무리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원칙이 가장 울림이 컸다. 꼭 예술 분야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는 '전문성'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며, 여러 우물을 팠다가는 큰일이 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굶어 죽는 예술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술로만'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잘 나가는 예술가는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는 것은, 한 가지 형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위한 다양한 뼈대를 이해하고 섭렵한다는 뜻이다.
마이클 잭슨은 본능적으로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 이외에도 음악 산업 자체를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산업 역사상 역대 최고의 계약을 해냈다. 비틀스의 음악 카탈로그를 사고 그 가치가 천 퍼센트 이상 상승하여 5000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역시 처음에는 조각가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 파고들 시점인 나이 마흔에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학자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300명 넘는 인력을 감독하고 총지휘하는 법도 배워나가며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거부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그렇게 그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이렇게 새롭고 광범위한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그의 '산만한 마음'에서 나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칙 중 일부는 너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후원자를 찾아라', '커뮤니티 속으로 들어가라' 등). '공부 잘하고 싶으면 교과서로 공부하시면 됩니다'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알맞은 교과서를 찾고 올바르게 공부할 수 있는지 좀 더 실용적인 팁이 있으면 좋았겠다.
* 사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술가로부터 후행적으로 분석한 글이라, 꼭 책에서 제시한 원칙대로 해야만 한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말해, 이 책에서 굶어 죽는다고 표현한 다양한 행동들을 곤조 있게 밀고 나가 성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책에 아쉬운 부분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분야(그림, 조각, 작곡 등)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읽었을 때 더 필요한 조언이 담긴 책이다.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이 원칙만 따른다면.. starve 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상품에 값을 매기고, 그 값만큼 지불한다. 하지만 예술은 상품보다도 '선물'이라고 인식이 된다. 재화로 여겨지지 않으니 지금까지는 예술작품 자체로 상업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연결과 네트워킹이 더욱 쉬워지고, NFT같이 오프라인 이외의 공간에서 예술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지고 있다. 두둑한 주머니는 충만한 영혼을 만들고, 이는 다시 더욱 훌륭한 예술로 탄생한다. 창조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 책을 읽으면서 Alan LaVern Bean이라는 NASA 우주 비행가 겸 화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달을 걷는 네 번째 사람이었는데, 그의 노년에는 그 경험을 그림으로 남기며 살아갔다. 아래는 그의 다양한 작품 중 Rock 'n' Roll on the Ocean of Storms (the trials of collecting Moon rock) (200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