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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면글면 Sep 18. 2024

엄마의 환갑을 준비하다보니

인생살이

대학원 첫 학기를 정신없이 보내는 중이었다. 불필요하게 생각되는 일들은 거의 다 뒤로 두고 어떻게든 대학원 생활에 적응하려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 중에 절대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날이 있었다. 바로, 엄마의 환갑. 의미있게 기념하는 첫 생신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매년 하던 생일과 비슷하게 축하해드린다면 엄마도 나도 아쉬울 것 같았다.


공부를 따라가느라 바쁜 와중에 무언가 이벤트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지금껏 안해봤던 것들을 해보기로 하고 예쁜 꽃으로 장식한 떡 케이크 안에 용돈을 잔뜩 넣은 용돈케이크를 주문하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분홍빛 파스텔톤으로 디자인하기로 하고, 그 케이크 위에 어떤 토퍼를 얹을지 고민했다. '꽃보다 더 고운 우리 엄마'를 할 지 아니면 지금껏 고생하셨고, 참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을 넣어야 할 지. 화사한 꽃다발도 필요했다. 너무 쨍한 색은 안되고, 은은하면서도 너무 밋밋하지 않은 파스텔톤 꽃들로 제작해달라고 예약을 해두었다. 케이크도 꽃다발도 토퍼도, 하나하나 엄마가 어떤 걸 좋아할 지 생각하면서 골랐다. 나를 낳고 기른 지 삼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소녀같은 우리 엄마가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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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부엌에 계셨다. 엄마의 마음이 즐거울 때나, 무거울 때나 한결 같았다. 엄마가 즐거울 때는 라디오가 켜져 있거나 콧노래가 흘렀지만, 마음이 어려울 때는 칼질 소리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는 변함없이 가족을 위해 부엌에 서셨다. 가족이 힘든 시간을 지날 때, 엄마는 먹을 것에 더 신경쓰셨다. 당신이 그렇게 해왔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나 동생이 아플 때도 그렇고, 회사 일로 또 사람 때문에 지쳐서 방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는 날이면 엄마는 평소보다 더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셨다. 엄마는 백 마디 말보다 든든한 밥상에 더 힘을 실으셨던 것 같다. 엄마의 밥은 늘 맛있었고, 위로가 되었다. 그 밥심으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엄마는 설거지나 계란후라이 한 번 해보지 않고 정말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었다. 그런 엄마는 지금은 못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주부 구단이 되었다. 한 때 명동과 이대 백화점을 휘젓고 다니던 세련돼던 엄마는 결혼 후 아빠의 지방 발령을 따라 경북으로 이사를 갔고, 서울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지방으로 간 엄마는 말도 안 통하는 아기와 집에 단둘이 남겨진 낮 시간이면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기찻길, 그 위를 지나는 기차들을 보면서 서울 가는 생각을 했더랬다.


엄마는 언젠가 자신이 파출부 같다고 했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엄마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 아빠, 나, 동생은 엄마 덕분에 빨래도, 설거지도, 다림질도 하지 않아도 됐고, 그 시간을 아껴 각자의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인생은 항상 누군가의 인생보다 뒤에 있었다. 엄마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자기 삶의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그런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던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서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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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멋지다고 할 법한 인생 대신, 엄마는 소소한 취미 생활을 하셨다. 수영, 도자기, 뜨게질, 십자수, 서예, 캘리그래피, 꽃꽂이, 커피, 구슬공예, 빵 만들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배우셨다. 그 중 수영과 뜨게질은 정말 수준급으로 누군가를 가르쳐도 될 정도다. 엄마에게 취미 생활은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가지는 취미와는 다른 의미였을 것 같다.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속마음이 위로받는 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주부가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당신 자신으로 있어도 되는, 엄마에겐 자유와 해방을 주는 시간이었을 것도 같다.


엄마는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문화센터에 가시는데, 그 시간이 엄마에게 활력을 주는 것 같다. 난 늘 새로운 걸 찾아 배우는 엄마가 참 멋지고 존경스럽다. 엄마는 종종 나더러 힘들더라도 돈버는 일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하시는데,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이다. 돈 벌면서 나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되게끔 살라고. 그치만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한 엄마의 덕으로 살았다. 엄마의 열심 덕분에, 엄마가 매일 차려준 따뜻한 밥상 덕분에 하루하루 꿈을 꾸었고, 지금도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엄마의 헌신 때문에, 존재 때문에 나는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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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환갑을 준비하다보니, 엄마의 인생이 밀려왔다. 그게 어쩐지 슬프고 또 감동이 되어 글로 꼭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엄마가 당신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을 주는 일들로 삶을 가득 채워가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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