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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롱썸 Jul 01. 2017

요하네스버그 시내로 나가다

직장, 집 외에는 어디도 안 가는 것이 너무나 답답해졌다.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다 보니 겁은 많아지는데, 그래도 이렇게 집에만 박혀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티투어를 결심했다.


시티투어는 로즈뱅크에서 시작하는데, 샌튼 역으로 가면 Nelson Mandela Square West Tower 맞은편 Sandton Convention에서 공짜 셔틀을 타고 로즈뱅크로 갈 수 있다.


그렇게 요하네스버그에 온 지 2주가량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된 요하네스버그 시내를 처음 볼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샌튼에 있으면서 페인트칠 하나 벗겨진 곳 없는 건물만 보다가, 사람이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은 곳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에 온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지만, 평소에는 내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얼마 전 사무실 건물 전체가 단수가 된 적이 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사무실뿐만 아니라 사무실이 있는 온 건물 전체가 물이 안 나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주 가까이에 호텔이 있어 호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기는 했지만,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나 싶었다


그제야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작년 에티오피아에 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정부가 인터넷 접근을 차단하여 인터넷을 못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가 시도 때도 없이 끊겨 밤에 촛불을 켜놓고 책 보는 일은 예사였다고 하였다. 


이 곳은 그 정도는 아니다. 전체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절반 가량이 남아공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지 전기료가 굉장한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서 난감했던 적은 다행히 아직까지는 없었다. 전기장판으로 근근이 아침과 밤을 버티고 있는 코가 시린 겨울에 전기가 중단된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아무튼 굉장히 우아하고 고상한 방식으로 내가 드디어 아프리카의 시내에 나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티투어 2층 버스에 앉아 다운타운을 바라보니 이제서야 낯선 곳에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요하네스버그에 있다 보면 아주 자주 이 곳이 미국이나 유럽의 어디쯤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샌튼에 있으면 백인 비율이 상당히 높아 여기가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사진만 찍어놓고는 전혀 구분할 길이 없다. 


이 날 나는 아주 전형적인 시티투어 코스를 밟았다. Constitution Hill, Carlton Hotel, Apartheid Museum, SAB World Beer, The Grove에 갔다. 보았다기보다는 찍고 왔다는 것에 가깝게 서둘렀다.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신없이 보고 시간을 맞추어 버스에 탔다. 



점심을 먹은 곳은 칼튼 호텔이었다. 칼튼 호텔은 말이 칼튼 호텔이지, 이제는 더 이상 호텔이 없다.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이 점차 슬럼화 되면서 칼튼 호텔도 더 이상 이 곳에서 영업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철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 정도로 높은 빌딩이라, 가장 높다고 했나...   전망대는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그 외에 건물 내 음식점이나 잡다한 상점들도 영업 중이다.


전망대의 뷰는 요하네스버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만큼이나 감동적이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일행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피자집 주방 아주머니도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피자를 주문하려 카운터 앞에 서니 주방 아주머니가 중국인이냐며, 중국어로 인사를 하셨다.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한국인이라 답하였더니 역시나 약간 놀라셨다. 그 후 예쁘다는 아주머니의 칭찬에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와 일행을 쳐다보는 건 점원만이 아니었다. 피자집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우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역시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테이블의 청년들이 우리를 매우 빤히 쳐다보고 있어,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은 그들을 수상하게 생각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내가 살던 한국 동네에 흑인 여자 두 명이 와서 재잘거리며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면, 나 역시도 쳐다볼 것 같았다. 


샌튼에는 워낙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니 대부분 우리를 관심 있게 쳐다보지 않았지만, 이 곳은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흑인이었다. 샌튼에서는 백인, 흑인, 백인과 흑인의 mixed, 인도계 흑인, 동양인 등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곳은 굉장히 높은 비율로 거의 흑인만 있었다. 같이 전망대에 올라간 몇몇의 백인들을 제외하고는, 이 건물에서 본 사람 중 우리 외에는 모두 흑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중앙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그 앞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애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눈길을 보내더니 급기야는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찾아왔다. 


"Why not?" 

사진 한 방 정도야 얼마든지. 하면서 남들의 사진에 내 얼굴을 넣는 것에 인색해하지 않고 있다. 

사진을 찍어달라던 쇼핑몰 아르바이트생

 

그러나 샌튼만 다니면서 '남아공 사람들은 동양인에 상당히 익숙한가 보다'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나라에서 나는 어딜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스티튜션 힐의 만델라, 간디 전시관


이 나라에는 곳곳에 만델라와 관련된 온갖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파르테이트 박물관인데 만델라의 젊을 적 인터뷰 영상부터, 그가 살면서 남긴 온갖 흔적들이 보존되어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지난겨울 라섹 수술을 하고 거의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시간을 보내면서 넬슨 만델라 자서전을 들은 적이 있다. 자서전은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지루했다. 라섹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있는 훨씬 재밌고 신나는 것들을 하느라 결코 듣지 않았을 책이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당시에는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졸다 깨다 하면서 들은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는 남아공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상하게 했다. 그가 재판을 받은 곳, 수감 생활을 하던 감옥과 섬, 석방된 그를 보러 나온 인파가 가득했다는 그의 집 앞 길 등을 머리로 그리며 들었다. 내 생에 남아공이라는 나라에 갈 기회나 있을까 싶던 것이 불과 네 달쯤 전인데, 그 나라에 내가 잠시나마 살고 있다는 것이 참 묘하다. 


 

아파르테이트 박물관 앞 가장 좋아보이던 자리
아파르테이트 앞 두번째 쯤으로 좋아보이던 자리


시티투어는 금단의 구역에 발을 담근 듯한 느낌이었다. 흉흉한 이야기에 잔뜩 겁을 먹어 시티투어에 해당되는 건물들만 둘러보고 주변은 거의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시내에 나올 용기를 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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