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ghyun Lim Feb 10. 2020

일주일치 일기

 기억한다는 행동은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특히나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내가 무엇을 언제 먹었는지, 누구와 먹었는지 등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자신의 시간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뜻일 테다. 

'지난주 어땠어?'

이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주중에 나 어땠지? 뭐했지? 하면서 되뇌어보기도 하고 사진첩을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떠올렸다. 주중에 필자는 그냥 일만 했다. 야근을 했다. 회사에 갔다가 집에 와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그냥 씻고 바로 갔다. 음식의 메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일을 잘 끝마쳐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매여있었다. 나의 그 상태만 기억날 뿐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걸 먹고 보고 들었는지 아예 지워져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뭔가 슬퍼졌다. 나의 5일이 나의 일부를 녹이고서 증발해버린 허무함에 가라앉았다. 그저 소음이 돼버린 일상이었던 거다. 

 S/N ratio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거칠게 번역해보자면 신호 대 잡음비인데, 이 비율이 높을수록 신호(Signal)와 잡음(Noise)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태이고 낮을수록 신호와 잡음이 구분되지 않아 신호 자체가 잘 잡히지 않는 상태이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쉽다는 건 일상의 S/N ratio가 크다는 말과 같을 테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하나라도 해야 시간의 증발을 막을 수 있다. 그 행동이 곧 기점이 되어서 반복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나누어주면서 일주일치 일기를 공란으로 남기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밤 산책을 해볼까 한다. 차마 놓쳤었던 추위에 떨고 있는 별들로 하루를 기억해놓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몸이라는 소비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