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8)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이하 미션 시리즈)의 주인공 이단 헌트와 그를 연기한 배우 탐 크루즈는 모두 유별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남다르게 투철한 책임감은 영화 안팎에서 모두 중요한 요소다. 배우의 경우는 잠시 뒤로 하고, 먼저 이단 헌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션 시리즈는 극단적인 상업 영화다.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편히 즐길 수 있는 팝콘무비라는 뜻이다. 영화는 캐릭터와 함께 직선으로 질주한다. 한 작품 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건이, 선역과 악역이 존재한다. 토끼발이 무엇인지, 엔티티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 제시되는 설명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 해도 서사를 따라가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전편들과 달리 이번 영화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Part1>에서는 몇 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 중 하나는 가브리엘이 일사와 그레이스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며 이단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장면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때 이단의 상태와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단은 한 귀퉁이를 잃은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 때문에 위험해진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좌절했다. 은퇴조차 뜻대로 되지 않자 아내와 이별을 택하고 그의 죽음을 위장했다. 만나기는 커녕 연락초자 마음대로 하지 못 하고, 간혹 멀리서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배타적인 애정관계에서조차 이단은 상대방을 돕고 구해주는 데 훨씬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이단에게 일사 파우스트는 알 수 없는 변수 같은 존재였다.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인 일사 파우스트는 2015년 <미션 임파서블:로그 네이션>에서 포로로 잡힌 이단을 구해주며 처음 등장했다. MI6 요원으로서 신디케이트에 잠복 중인 일사는 두 조직은 물론 이단-IMF,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도 여러 갈래의 복잡한 줄타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이단과 협력하기도, 때로는 대적하기도 한다. 둘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어왔다. 일사는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만큼 현명하며 필요할 때는 적절한 도움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전략적이다. 맞수가 되어 대적할 수도 있으며 마음 놓고 서로의 등을 맡길 수도 있으니, 아마 그와 함께한다면 이단은 유달리 무거운 책임감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될 것만 같다. 이제 일사는 어렴풋한 희망처럼 보이게 됐다.
가브리엘과 대적하는 장면에서 의문이 든 이유는 관객이 오랫동안 이단과 일사의 관계에 목격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함께하며 중요한 관계를 형성해온 일사와, 이제 막 만나 동료인지 적인지도 잘 모르겠는 그레이스 중 누군가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다면 일사를 선택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비록 성급하게 연출되었을지언정, 이번 편에서는 일사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로 변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무모할 정도로 위험하고 말도 안 되는 선택일지라도 이단 헌트는 늘 가장 옳은 선택만을 해왔건만, 왜 이 장면에서만은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 하고 주저하고 고뇌하나? 그레이스가 일사만큼 소중해져서? 더 큰 대의를 위해서? 둘 다 좋은 대답은 아닐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Part.1> 오프닝 시퀀스 끝자락에서 이단 헌트는 의미심장하게 IMF 조직의 모토를 말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어둠 속에 살고 죽는다. (We live and die in the shadows, for those we hold close, and for those we’ve never met)' 나와 가까이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도대체나 가능키나 한 일인가? 태양과 명왕성만큼이나 먼 두 존재를 이 문장은 너무나 가볍게 병치해 놓았다.
이것은 IMF 그 자체이기도 한 이단의 신념이기도 하다. (가치관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가벼워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누구보다 충실히 이 관점에 따라 행동한다. 이단 헌트가 가장 뛰어난 요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눈 앞의 한 사람을 온 인류처럼, 온 인류를 내 눈 앞의 한 사람처럼 대하는 능력.
기타노 다케시는 저서 <죽기 위해 살기>에서 '5,000명이 죽은 사건을 5,000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칭하는 것은 모독이며 한 사람이 죽은 5,000개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고 썼다. 죽은 뒤 남은 자들에게 조금 더 집중한 관점일 텐데, 이는 충분히 IMF의 서브모토가 되고도 남는다.
전작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에서 이단은 친구이자 동료인 루터를 구하느라 미션에 실패했다. 그로 인해 세계는 핵폭발의 위험에 처하는데, 결과적으로 친구의 목숨과 전 인류의 목숨을 맞바꾼 셈이 되었다. 루터는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자책하지만 정작 이단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 선택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마 누군가 이단 헌트에게 트롤리 딜레마를 묻는다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차를 멈추고 양 선로에 묶인 사람을 모두 구하겠다고 답할 테다.
그러니 가브리엘의 강요에 대해 이단은 선택하지 '못 한' 게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트롤리 딜레마에 대입하자면 기차는 엔티티-가브리엘, 선로에 묶인 사람은 일사와 그레이스가 된다. 이단은 누구를 구할지 선택하는 대신 기차를 멈추기를 택했다. 그것이 가장 옳은 답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가 남긴 또 다른 의문은 그의 이 일관성에서 기인했다. 이미 미션 시리즈 내에서 서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한 일사 파우스트의 퇴장 방식이다. 나 아닌 타인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인물에 대해 일곱 편이나 영화를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의 태도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결말에서는 마치 그레이스가 일사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처럼 연출되었는데, 일사는 서사적으로나 그간 보여준 능력 면에서나 이미 주요한 자리를 점했기 때문에 이 손쉬운 퇴장 방식이 큰 아쉬움을 남겼다. 미션 시리즈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무비는 남성 주인공과 페어를 이루는 여성 주조연을 때마다 편리하게 바꿔치우는 구태한 방식을 중단할 때가 되었다.
반면 이단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일을 대하는 태도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일지언정 그는 불평불만 없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류의 담담한 자세로, 그러나 아주 열성적으로 임한다. 직업이 곧 삶인 인물이니 직업의식을 곧 삶을 대하는 관점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언가에 이렇게 온 힘을 다해 뛰어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에 대해 사랑 아닌 다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뻔하다고 고개를 돌리지 말아주시라...) 세상을 보는 애정어린 눈이야말로 가장 귀한 재능 아닌가.
애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화 속 이단과 배우 탐 크루즈가 겹쳐 보이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2002년, 9.11 이후였던 오스카 시상식 오프닝에서 탐 크루즈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의 미흡함을 보완하기 위해 원문을 함께 기재한다.)
명감독 빌리 와일더는 '무엇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하나요?'라는 질문에 간단한 답을 했습니다. '약간의 마법'이요.
무언가가 스크린을 뚫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있거나 집에서 보고 있죠. 약간의 마법이 우리의 삶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이 일어났을 때 어디 있었는지, 그 극장을, 팝콘을,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언제나 기억할 거예요.
(중략)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영화는 내 구원자였습니다. 지난 9월 우리를 뒤흔들어놓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배우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어요. '우리가 뭘 하는 거야?', '우리 뭘 하는 거지? 이게 중요한가?',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긴 한가?' 그럼 오늘 같은 날은 어떤가요? 우린 영화의 기쁨과 마법을 기념해야 할까요? 감히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도요.
짧은 장면, 몸짓, 캐릭터 사이의 눈빛이 선을 넘고, 벽을 뚫고, 편견을 녹이고, 그냥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그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요. 그 약간의 마법이요.
When the great director Billy Wilder was asked 'What makes movie unforgettable?', his answer was simple:'A little bit of magic'
We are all here tonight or sitting at home watching because someting came off a movie screen. A little bit of magic touched our lives. And you always remember where you were: the theater, the pop corn, the people you were with when it happened.
(Omitted)
In good times and poor times, movies were my lifesaver. In the last September, came an event that would change us. Actor friends said to me 'What are we doing?', 'What are we doing? Is it important?', 'Is it even important what I do?' And what of a night like tonight? Should we calebrate the joy and magic that movies bring? Well, dare I say it, More than ever.
A small scene, a gesture, even a glance between characters can cross lines, break through barriers, melt prejudice, just plain make us laugh. It brings us all together. That little bit of magic.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잘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이 극단적이고 묘기에 가까운 액션을 가능케 한 것은 영화에 대한 탐 크루즈의 애정이다. 그 덕에 21세기 관객들은 수 십 년 동안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생겼을지 모를 마법 같은 애정이 계속되는 한, 그에 대한 나의 이 즐거운 채무도 늘어나기를 바란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