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7)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는 기분 좋게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것도 몇 번이나. 영화 제목은 쏙 빠져 있는 타이틀 시퀀스가 끝나고 관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좀비의 얼굴이다. 조금 과장되고 어색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보면 '컷'이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카메라는 뒤로 쑤욱 밀려나와 배우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촬영 스텝들을 비춘다. 관객이 가장 먼저 본 두 주연 배우 치나츠와 켄은 말하자면 이중의 연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영화의 주연이자,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마도 좀비물일 게 분명한) 작품까지.
괴팍한 감독이 주연 배우를 윽박지르다가 자리를 뜨고 두 주연 배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만 남아 휴식을 취하던 때, 정말로 좀비가 등장한다. 찍고 있던 작품 속 설정이 실제 상황이 된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호통을 치던 감독 히구라시는 이제야 진짜 얼굴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그가 진짜를 찍기 위해 금지된 주술을 행한 것이다. 치나츠와 켄, 메이크업 아티스트 나오 세 일행은 좀비가 되어가는 스텝들과 미쳐버린 감독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도주는 아슬하게 실패하고, 켄마저 좀비가 되어 치나츠에 의해 죽는다. 이 상황은 관객들이 처음 보았던 바로 그 장면, 영화 속 작품을 위해 수십 번 찍고 있던 바로 그 장면과 동일하다. 반면 치나츠는 극중 극에서와 달리 켄에게 물리는 대신 도끼로 그를 죽인다. 감독은 대본을 따르지 않았다며 격분하지만, 치나츠는 그런 감독까지 살해하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한다. 치나츠가 도착한 곳은 아마도 감독이 만들었을 피로 그린 마법진이다. 피투성이가 된 치나츠를 부감으로 잡으며 카메라가 상승할 때, 영화의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한지는 37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끝난 걸까? 내가 본 게 단편영화였을까? 어리벙벙하게 고민하는 순간, 화면에 노이즈가 발생하고 또다시 '컷'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 실제 상황이라고 믿고 보았던 바로 그 상황 또한 연출된 촬영 현장이었던 것이다.
카메라의 회전과 함께 우리는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간다. 히구라시는 '빠르게, 싸게, 품질은 그럭저럭'을 모토로 하는 감독이다. 이 모토 덕에 방송국으로부터 좀비 전문 채널 스페셜 드라마의 감독을 맡아줄 것을 의뢰받는다. 새로운 기획에서 독특한 점은 카메라 한 대만을 사용해 원 테이크 원 컷으로 찍어야 하고, 방송은 30분 동안 생중계로 송출된다는 것.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된다'고 주문 받는다. 이 특별한 주문은 방송의 제목이자 영화 전체의 제목이 되었다.
원 테이크 원 컷으로 생중계 방송을 찍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 히구라시는 사고 없이 생중계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배우 역할의 배우, 스텝 역할의 배우, 스텝까지 모두 불러모아 연습하기 시작한다. 주연 배우는 물론 조연 배우들도 다루기 쉽지 않다. 시나리오에 토를 다는 것은 기본이고 나는 특정한 물만 마셔야 한다, 이 장면은 못 찍겠다,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대신 안약을 넣겠다는 둥 배우님들의 주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간은 성실히 흘러 촬영일이자 방송일이 되고 촬영 시작까지 두 시간여가 남았을 때, 감독 역할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역할로 출연하기로 한 배우가 추돌사고로 촬영장에 오지 못 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것이 감독인 히구라시가 감독 역할의 배우로 출연까지 하게 된 이유다. 딸과 함께 촬영 현장에 방문한 전직 배우 아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역을 맡는다.
이렇게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관객들은 같은 장면을 세 번째로 보게 되지만,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다. 촬영장에서의 이야기는 동일하게 되풀이되지만 그 상황에는 조금 더 살이 붙었다. 초반 괴팍하게만 보였던 히구라시는 예측불허의 생중계 현장을 통솔하면서 연기까지 해야 하는, 그야말로 무거운 책임을 업은 일당백 총감독이 되었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졌던 공백과 어색한 연기 톤도 그 연유를 알기에 재미 요소가 된다. 생중계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고는 인물들을 동분서주 정신없이 뛰게 만든다. 관객은 초반부의 엔딩크레딧을 보았으니 이 방송이 무사히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 느끼는 재미는 '과연 방송이 잘 될까?'하는 조마조마함이 아니라, '어떻게'를 지켜보는 데 있다. 이 많은 사고를 '어떻게' 수습하고 무사히 촬영을 마치는지가 세 번째 반복에서의 관람 포인트인 셈이다. 허둥거리는 인물과 함께 정신 없이 화면을 쫓아가는 한편, 지금까지 보아온 숱한 방송과 영화를 비롯한 영상 작품을 떠올리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그 뒤에는 '그 작품도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세상에 나왔겠구나'하는 경외와 안도감이 따라온다.
피는 못 속이는지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딸의 기지로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되고, 지미집 대신 인간탑으로 찍은 예의 부감숏과 '컷'이라는 음성까지 나오고 나면 인물들과 관객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카메라는 인간탑을 쌓은 배우와 스텝, 제작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듯 각자의 얼굴을 비추다가 이내 또다시 부감으로 촬영 현장 전체를 조망한다. 화면에는 다시 노이즈가 생기고 페이드아웃으로 마무리되는듯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반복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화면은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카메라는 훨씬, 훨씬 뒤에 위치해 지금까지 본 중 가장 넓은 광각으로 현장을 비춘다. 그러니까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이 영상은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다. 배우 역할의 배우와 스텝 역할의 배우, 실제 스텝까지 모두 고르게 비추는 이 카메라는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카메라 감독을 따라, 혹은 스텝들을 따라 걷고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난다. 이제 관객에게는 카메라도 하나의 캐릭터다.
세 번째 반복에서 히구라시는 부감숏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고집하며 '아무도 거기까지 안 본다'는 제작자에게 '안 보긴 누가 안 봐요!'라고 응대한다.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을까. 히구라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내가, 우리 모두가 봐요'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다)
흔히 영화는 감독 예술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그 말에 대한 유쾌한 반론이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있는 사람은 물론 카메라 뒤와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예술이라고, 한 장면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고 모든 이를 호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카메라를 멈춰서는 안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러니까 아무도 찍지 않을 때가 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