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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넘 Jan 22. 2023

세상 모든 이야기의 원천-<3000년의 기다림>

영화 읽기 (6)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서사학자 알리테아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 그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서사학자가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 학회 일정 때문에 터키에 방문한 알리테아는 더 멋진 기념품을 사주겠다는 동료를 만류하고, '더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며 모조품으로 추정되는 푸른 유리병 하나를 산다. 호텔방에서 병에 묻어있던 그을림을 닦자,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난다. 병 속에 3,000년 동안 갇혀 있던 정령 지니다. 지니는 자신을 풀어준 알리테아에게 감사하다며 보답으로 세 가지 소원을 빌라고 말한다. 서사학자이자,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알리테아는 정령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한다. 이미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니에게 빌만큼 깊은 갈망도 없거니와, 소원의 정령이 나오는 세계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소원으로 인해 결국 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테아가 불신하자 지니는 자신의 선함을 믿어달라며 3,000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는 최초로 병에 갇혔을 때의 이야기다. 지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시바를 사랑했지만 시바는 솔로몬과 함께하기로 했고, 마법사 솔로몬은 지니를 병에 가둔다. 그 병은 바닷새에 의해 홍해 깊은 곳에 떨어지고, 잠도 잘 수 없는 정령 지니는 그곳에서 2,500년을 보낸다.


그리고 오랫동안 겹친 우연과 우연에 의해 귈텐이라는 여성 노비에게 발견된다. 지니의 두 번째 이야기다. 귈텐은 무스타파라는 왕자를 사랑하고 있었고, 소원으로 그의 사랑을 빈다. 소원대로 무스타파는 귈텐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에겐 불운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잇기 바랐던 후궁의 계략으로 무스타파와 귈텐 모두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귈텐이 마지막까지 세 번째 소원을 빌지 못 했기 때문에 지니는 또다시 병 속에 갇히게 됐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하렘의 목욕탕 석판 아래 숨겨둔 병에 갇혀있던 지니를 찾은 것은 또다시 몇 백 년이 지난 뒤, 술탄의 총애를 받는 '슈가럼프'였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지니는 어서 소원을 빌라고 재촉하고, 왕을 등에 업어 소원 따위 없는 슈가럼프는 '네가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가서 바닷속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그의 유일한 소원은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지니를 꺼내준 사람은 나이 많은 상인에게 팔리듯 결혼한 12세 소녀 '제피르'다. 제피르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 비견될 만큼 똑똑한 사람이지만,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놀라운 능력은 빛을 볼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던 제피르는 첫 번째 소원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려달라고 한다. 지니는 제피르에게 철학, 역사, 기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알려주고 제피르는 점점 더 똑똑해진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물질의 원리에 대한 공식만은 풀 수 없었기에 그것을 두 번째 소원으로 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나 자유를 열망하던 지니는 제피르의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자유가 곧 구속이자 불행이라고 느끼기에 이른다. 그래서 세 번째 소원을 말하려던 제피르의 입을 막는다. 제피르는 지니의 아이를 갖지만, 점차 지니가 자신을 구속한다고 느끼게 된다. 지니는 그럴 때마다 화가 난 제피르를 달래기 위해 병 속에 몸을 숨겼는데, 어느 날은 지니가 몸을 숨기는 순간 제피르가 '너를 만났다는 것조차 잊고 싶다'고 말한다. 제피르의 마지막 소원도 이루어졌다. 이 절묘한 우연으로 인해 지니는 다시 병에 갇혔고, 알리테아에게 발견되기에 이른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여러 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두 파트로 나누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전반부, 이후 이어지는 내용이 후반부인 식이다. 이를 나누는 기준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될 수도, 터키와 런던이라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알리테아의 감정이다. 알리테아는 지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소원을 빌어 함께 알리테아의 집이 있는 런던으로 간다. 런던에 적응하지 못 한 지니는 소멸의 위기를 겪지만 이 문제는 알리테아가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소원으로 빎으로써 해소된다. 지니가 그 후 종종 알리테아를 찾아온다는 암시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서사학자를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내세웠다는 점과 '천일야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속 이야기들은 이 영화가 이야기에 대한 것임을 명백히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는 층층이 쌓인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아래에는 지니가 해준 네 개의 이야기가 있고, 그 위에는 네 개의 이야기와 교차적으로 제시된 엘리시아의 과거 이야기가 있다. 또 알리테아와 지니가 만난 터키 호텔방에서의 이야기, 그 이후 런던에서 이어지는 알리테아와 지니의 이야기까지. 결말부에 이르면 시종일관 내레이션으로 들리던 알리테아의 목소리가 실은 그가 쓴 책의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실은 알리테아의 글로써 서술된 것이었고, 지금까지 관객이 보아온 것은 알리테아가 활자로 풀어낸 이야기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지니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 보이던 아름답고 환상적인 화면은 누가 재구성한 것일까? 실제로 목격한 지니의 기억일까 혹은 이야기를 들으며 알리테아가 한 상상일까? 지니가 3,000년 동안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제피르가 알리테아와 같은 자세로 다리를 떨고 책을 읽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먼저 지니의 기억을 그대로 재구성한 화면일 경우, 알리테아가 제피르의 환생이라거나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반대로 알리테아가 지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한 장면이라면 알리테아는 이미 그때부터 지니를 사랑했으리라. 그리고 한 가지 가능성이 더 남아있다. 둘 다 참일 경우. 제피르와 알리테아는 실제로도 같은 버릇을 갖고 있었고, 알리테아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니를 사랑하게 됐다. 아마도 그 둘 각자의 고독함으로 인해.


지니가 병 안에 갇혀 있을 때의 고독함에 대해 토로할 때 알리테아는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던 알리테아는 유년기에 환상의 친구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언제든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알리테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그 친구는 알리테아가 이야기를 쓴 책을 불태우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독한 알리테아는 그래서 더욱 이야기에 몰두했다. 모든 이야기의 근원을 찾으면 고독도 끝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러니 지니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자신이 찾고 있던 것, 피하고자 하던 것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 알리테아에게 지니는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의 셰에라자드다.


재미있게도 성별이 반전된 셰에라자드 지니의 이야기는 알리테아와 관객을 이스탄불 시내 호텔방으로부터, 객석으로부터 홍해는 물론 메소포타미아와 코카서스, 정령들의 세계로까지 초대한다. 이야기의 힘은 이렇게 강력하다.


알리테아는 지니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쓰고도 태우지 않았다. 그 결과 어린 시절 환상의 친구가 사라진 것과 달리 지니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니와의 이야기가 관객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알리테아가 찾던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생명력이다.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 기록된 이야기만 전해질 수 있다. 이야기에 그런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사랑이라고 영화는 스치듯 알려준다. 이야기에 사랑이 소재로 쓰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사랑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좋은 꿈을 꾸기를 바라고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란 많은 양육자들처럼, 사랑하는 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 연인처럼, 더이상 다른 여자들이 죽어가지 않기를 바란 세예라자드처럼.


'사랑보다 혐오가 더 힘이 세다'고 안타까워하는 알리테아에게 지니는 인간은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힘으로 인류를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으면서 혐오의 힘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반부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장면과 놀라운 이야기, 흡입력에 비해 후반부는 긴장감과 몰입도가 떨어진다. 런던에서 벌어지는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지니가 겪는 소멸의 위기인데, 비교적 잔잔하게 해소되기 때문이다.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이 이야기도 끝나야 한다'는 내레이션처럼, 끝내야 하기 때문에 끝낸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초반부터 '이 이야기는 실화다'라고 강조하던 알리테아의 목소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떠나지 않는 것은 결말의 빈약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빈약함이 만든 가능성 때문이리라. 3년 뒤, 그리고 또 3년 뒤 알리테아와 지니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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