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5)
두 주인공 엘로이자와 마리안느는 외딴 섬에서 시한부 사랑을 한다. 엘로이즈는 귀족 아가씨로, 집안에서 정한 혼사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고 마리안느는 그 결혼의 성사를 위해 (엘로이즈와 결혼할 상대 집안의 허가를 위해)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
엘로이즈는 이런 결혼에 거부감을 느끼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를 거부하는 중이므로, 전에 왔던 화가들은 모두 초상화 그리기에 실패했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딸의 결혼을 위해 화가 마리안느를 초청해, 엘로이즈에게는 산책친구라고 소개하고 엘로이즈 몰래 그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청한다. 이 어려운 부탁을 당연히 수락할 정도로 마리안느는 화가로서 자신의 실력에 자신만만하다. (여성 화가는 중요한 주제를 그리도록 허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롱에 작품을 출품하고, 반응을 보기 위해 직접 살롱에 나가기도 한다.) 첫 번째 실수였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첫 번째 초상화를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린다. 엘로이즈에게 엘로이즈 자신과도 닮지 않았고, 마리안느와도 닮은 점이 없다는 비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느는 납득하지 못한다. 그림의 문제점을 찾는 듯 한참동안 눈을 부릅뜨고 그림을 뜯어보다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림을 지우고 만다. 두 번째 실수였다.
얼굴이 지워진 그림을 본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화를 내지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다. 자신이 섬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5일의 시간 동안 다시 그림을 그리라는 것.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엘로이즈가 기꺼이 모델이 되겠노라 선언한다. 세 번째 실수다.
엘로이즈 몰래 엘로이즈를 관찰하고 그림을 그려야 했을 때는 마리안느만 일방적으로 시선의 주체 자리에 위치했다. (물론 마리안느는 이 관계를 깨트리겠다는 양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는 사람이다.) 엘로이즈가 모델이 된 뒤에는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는 입장으로, 기존의 일방적이었던 관계가 전복된다. 엘로이즈의 말을 빌리자면 비로소야 둘은 '평등'한 관계가 된다.
세 번의 실수 중 하나라도 비껴 갔다면 둘은 오르페우스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해석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기꺼이 그 고통을 겪겠노라 선택한 인간이다. 또 그들은 그러한 실수를 저르지 않을 수 있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다.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사랑에 '빠진' 것보다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랑은 어머니가 돌아오기까지 남은 5일의 시간동안만 가능한, 그야말로 '타오르는' 시한부의 사랑이다.
엘로이즈가 자신의 옷에 불이 붙었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때 마리안느와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일 마리안느는 이 때 처음으로 당신과 키스하고 싶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타오르는 치마는 엘로이즈의 얼굴 위로 아지랑이를 만들고 그 순간을 꿈처럼, 환상처럼 보이게 한다. 사랑의 빠진 자의 시선이다.
그럼 엘로이즈가 처음으로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은? 엘로이즈는 명확히 대답해주지 않지만 관객은 알 수 있다. (마리안느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서로를 들여다보던 순간일 것이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뒤에서 '돌아보라'고 종용한다. 엘로이즈가 상상한 에우리디케처럼. 마리안느에게 마지막 인상이 되려고? 마지막으로 마리안느를 보고 싶어서? 나는 마리안느에게 마지막 도피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엘로이즈의 가설대로라면 에우리디케를 떠나보낸 오르페우스는 남은 생의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에우리디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 뒤돌아 보고 싶은 마음과 연인으로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 갈등할 때, 에우리디케도 그 갈등을 보고 있었다면? 자신의 욕망을 저버리고자 노력하는,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만을 보며 어두운 길을 걷는다면? 내가 그 갈등을 끝내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고통을 담보로 예술을 가능케 한다면? 밀라노(저승)에 가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마지막으로 마리안느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이렇게 마리안느-에우리디케는 운명으로 인한 이별에 힘없이 순응하는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별의 모습을 정하는 운명의 주체가 된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마지막 '보고 싶다'는 욕망을 이뤄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둘의 갈망이 겹쳤기 때문에 마리안느의 눈에 비친 환영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돌아보라'는 전언은,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누구보다도 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작별인사이자 서로를 위한 용기 있는 선물이다.
'십 수년 간 꿈꿔왔어요'
'죽음이요?'
'달리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