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넘 Jan 28. 2024

등돌림으로 보여주는 것-<괴물>

영화 읽기 (12)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열 여섯번째 장편영화 <괴물>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세 장에서 '누가 괴물일까'라는 동일한 질문을 던지지만 초점을 잡는 인물은 각각 다르다.


첫 번째 장에서 주시되는 인물은 안도 사쿠라가 연기하는 무기노 사오리다. 사오리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서 괴물은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이다. 사별 후 싱글맘으로서 초등학생인 아들 무기노 미나토를 키우는 사오리는 아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징후를 발견하고,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사오리는 아들의 말을 듣고 항의 차 수차례 학교에 찾아가지만 교장, 부장, 담임 교사 등 누구도 자신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 교사들의 태도는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담임 교사는 퇴직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들 미나토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두 번째 장은 미나토의 담임 교사인 호리 미치토시를 따라간다. 이제 막 부임한 초임 교사 호리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호시카와 요리라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리를 걱정해 가정방문까지 해 보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요리가 괴물이고 비정상이라는 둥 모진 말을 내뱉는다. 요리를 돕고 싶어도 방법은 잘 모르는 신입 교사로서는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던 중 미나토의 어머니가 찾아와 교내 폭력에 대해 항의하고, 호리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여긴 바를 그대로 전달하지만 정작 요리는 호리가 미나토를 폭행했다고 증언한다. 자신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던 교장, 선배 교사들의 말과 달리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진다. 호리는 어느새 폭행교사가 되어 지역사회는 물론 각종 언론의 비난을 받고, 애인에게도 버림받는다.


마지막 장은 일련의 사건 그 자체이기도 했던 두 아이, 미나토와 요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요리는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어딘가 이상한 별종이다. 그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의 폭력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괴롭힘과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보다는 여자 아이들과 주로 어울리고, 미나토와 친구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에 부쳐야 한다. 둘에게는 동급생 남자 아이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부모 중 한 명이 부재한다는 것과 남아 있는 주양육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먼저 미나토의 경우. 미나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를 지탱하는 책임감은 미나토에게 행복한 가정이 생길 때까지 돌보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나토는 불편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고, 어머니를 실망시킬 것만 같은 죄책감과 불안함, 미안함이 마음속에서 동시에 피어오른다. 같은 반 친구 요리와는 비밀 아지트에도 놀러 갈 정도로 친한 사이지만 다른 친구들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드러낼 수 없다. 요리와 친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함께 놀림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요리와 친하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요리가 괴롭힘 받을 때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요리의 아버지조차 요리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지만 미나토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친구들 몰래 요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요리의 존재는 다른 방향에서 미나토를 괴롭게 하는데, 요리와 함께 있을 때는 즐겁고 행복하지만 요리가 머리카락을 만졌을 때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 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요리를 차갑게 대해보기도 하지만 미나토의 고민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미나토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단 앞이다.


요리는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소위 ‘정상인’으로 교정한다는 명목 하에 물리적, 언어적인 폭력을 당하며 요리는 스스로를 ‘돼지의 뇌를 가진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괴물이기 때문에, 내지는 자신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기에 요리에게 안전한 곳, 마음 붙일 곳은 폐전차에 꾸민 비밀 아지트뿐이다. 미나토는 유일하게 그곳에 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이들은 갑작스레 앵글 밖으로 사라진다. 그 직전 관객이 목격한 것은 심한 폭력을 당한 듯 욕조에서 정신을 잃은 요리와 그를 구해주는 미나토, 그리고 요리의 몸에 난 폭력의 흔적이다. 그리고 엔딩 전까지 카메라는 절대로 그들을 담지 않는다.


그날 전차 안의 아이들은 <괴물>이 품고 있는 가장 큰 미스테리이자 핵심이다. 가장 높은 감정적 파고에서 카메라를 돌림으로써 영화는 무엇을 얻는가?


이 선택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찍어야 하나'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고레에다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욕조에서 막 꺼내진 요리의 몸에 난 상처가 드러날 때 카메라는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본 사람의 눈동자처럼 흔들린다. 카메라, 나아가서 관객조차 아이들에게 향하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둘에게 있어 전차 밖이 타인의 시선과 규범에 의한 폭력의 공간이라면 전차 안은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누구도 아이들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아이들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난다. 카메라가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려 전차 밖을 향하고 관객을 폭풍우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영화는 시선의 윤리를 획득하며 아이들의 편에 선 것이다. (군인과 경찰은 지켜야 할 대상에게 등을 돌리고 선다) 그러니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아야만 한다.


사오리와 호리가 마침내 아이들이 있는 전차를 찾아낸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도 카메라는 끝끝내 전차 안을 비추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은 비가 퍼붓고 난 다음 맑게 갠 하늘 아래 미나토와 요리가 들판을 달리는 모습이다. 신발 한 짝씩을 나눠 신은 탓에 한 발만으로 뛰던 아이들은 드디어 넓은 들판을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게 됐다. 전차 안에서의 일과 둘만의 감정은 그들만의 것으로 남겨두겠다는 꼿꼿한 선언이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추측해보자면 그곳은 고레에다가 <원더풀 라이프>에서 그렸던 사후의 공간인 것 같다. 아이들이 나누는 문답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 '그런 건 없는 것 같아'는 영화의 초반부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나누던 대화와 이어진다. 사라진 사오리와 호리, 급격히 바뀐 날씨와 화면의 톤도 불길한 단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질문에 답해보자. 그러니까 미나토와 요리가 그렇게 숨을 수밖에 없게 만들고 종국에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게 한 괴물은 누구일까?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자신의 아이를 정상성의 틀에 넣어 생각한 어머니와 아버지? 반쪽짜리 진실만 알던 교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희생양을 내세우는 데 급급했던 선배 교사들? 따돌림을 주동한 아이들? 이 목록은 아주 길게 늘어날 수 있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괴물은 누구?'라는 대사가 쓰여 있다. 물어보는 두 인물 아래에 늘어선 모두는 스스로 괴물이라고 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는 듯 렌즈 너머의 우리를 똑바로 쳐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No Crying은 눈물의 주문-<프렌치 디스패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