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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Jan 13. 2017

한국 그림을 보는 진짜 방법

[열네번째 책] 오주석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1. 시합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씨름꾼 중 누가 이길까요?

2. 씨름에서 진 사람은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요?

3.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요?

4. 이 그림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딜까요?

*답은 아래 글 속에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초중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시해설 봉사활동을 할 때가 있었다. 동선만 너무 복잡하지 않도록 해서 해설 코스는 본인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는데, 그때 내가 반드시 피하는 전시실이 '회화실'이었다. 나부터 옛 그림을 보면 '잘 그렸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나서 그 어떤 감흥도 없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설할지 감이 안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피했고, 어쩌다 애들이 교과서에서 자주 본 그 그림 어디있냐고 물으면 데리고 가서 보여주고, 간단한 설명에 그쳤었다.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은 이렇게 나처럼 그림이 어렵고,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잘 그렸네' 외에 옛 그림들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인문 교양책 말이다.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도 아닙니다. 온몸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온몸이 즐긴다고 할 때 기실은 우리의 영혼이 깊이 감동 받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한국의 美 특강>, 18쪽-


저자는 책을 통해 '예술을 온몸으로 즐기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림을 보는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그림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그림의 대각선 길이의 1~1.5배 거리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 이것이 세로쓰기를 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의 습관에 맞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위의 그림을 보면 문제의 답이 어느 정도 예상될 것이다. 오른쪽 위 중년의 사나이가 씨름 구경을 하고 있다. 윗몸이 앞으로 쏠려 있고, 입을 벌리며 경기를 보는 게 이 경기가 꽤 흥미진진하고, 그 옆에 사나이가 팔베게를 하고 반쯤 몸을 누인 걸 보면 씨름판이 한참을 지나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옆에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 낀 모습의 사람이 보인다.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니 이 사람이 이 씨름판에서 이긴 사람과 맞붙을 다음 선수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씨름꾼을 보면,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확실히 승기를 잡은 표정인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의 표정은 울상인 것을 보아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이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씨름에서 진 사람은 어디로 넘어질까? 이것 역시 표정으로 알 수 있는데, 다른 관객들의 표정은 평온한 반면 오른쪽 아래 사람은 크게 놀란 표정이다. 이렇게 봤을 때, 씨름에서 진 사람은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쓰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의 구도상 이 자리는 구석진 곳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인물을 화가가 진하게 그려 놓고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에서 오른쪽 아래 인물의 손 모양이 이상하다. 이 이상한 부분은 단원의 그림마다 하나씩 발견되서 단원의 그림을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주로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이라는 문제 지문 함께 나오고, 알고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에 자세히 볼 생각을 못 했던 이 그림을 멀리 떨어져서 오른쪽 위에서부터 천천히 살펴봤다. 하나의 이야기를 본 듯이 재미있고, 화가의 붓 놀림과 재치에 놀라게 된다. 이렇게 그림 보는 재미가 시작되는 것이다. 


옛 사람의 눈으로 봤다면 이제는 마음이다. 옛 그림은 옛 마음으로 봐야 한다. 그림 속에 여러 형상이 그려져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한 사람, 즉 화가의 마음이 자연과 인생에 대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묘사한 것이다. 때문에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결국 이 그림을 그려낸 화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자면 옛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봤던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자연의 음양오행에 기초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과 인생관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기초해 더 나아가서 조상들이 만들어 간 역사와 문화가 깃든 작품을 보여준다. 가장 높은 단계의 예술 감상으로 엄숙하고 단정한 정신미가 깃든 종묘와 초상화에 깃든 시대정신에 대한 설명이 가장 인상깊다.   



 살다 보면 정말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 정작 책 속에는 안 적혀 있구나 하는 일을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것에 역사가 있듯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림의 주제나, 대상, 붓놀림의 변화에 따라 시대를 구분해 고대 미술, 중세 미술, 근대, 현대 미술로 나눈다. 이렇게 시대를 구분해 미술사를 정리하고 교육하는 것의 주목적은 이전과 과거를 비교해서 발전 방향을 살피고, 의미를 성찰해 보며 총체적으로는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함에 있다.


시간을 기준으로 그 특징을 정리한 미술사가 일목요연하고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에는 분명히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한 시선일 수 있다. 역사는 발전을 거듭한다는 인식으로 고대 미술을 최하로 보고 중세, 근대를 거쳐 최상의 현대 미술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을 수가 있기 떄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장 핵심인 그림의 이야기가 부실해져서 작품의 살아 숨쉬는 의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초적으로 옛 그림을 관찰의 의미에서 바라보는 방법부터 해서 옛 마음으로 조상들의 지혜와 우주관을 보는 심화 방법, 더 나아가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까지을 하나같이 예를 들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교육의 효율을 위해 단순한 질서와 규칙을 부여한 미술사의 설명을 거부하고 하나하나 그림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여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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