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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u journey May 13. 2022

어쩌면 우리 부부의 시작이었을

<여행 1일차> 서울에서 충주 수안보온천으로

퇴사 3일 차.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렇게 좋은 날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한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연애 3년, 결혼 2년 동안 줄곧 사무실-집을 반복해왔었고, 일이 곧 우리고, 우리가 곧 일이었다. 불평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더 내 것처럼 일했고 그래서 더 하늘 올려다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관성처럼 한 주의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 주말 동안 밀려있던 연락을 파악하고 처리하고 드디어 한숨 돌렸을 점심시간에 우리는 둘이 덩그러니 앉아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지?"



먼저 우리의 목표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과제가 퍽 쉬워 보였던 것은 인천-제주 배편이 다시 생겼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출발 당일 찾아보니 선적 점검으로 4월에는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외에도 배와 관련된 정보들은 기상상황이나 현장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럼 남쪽으로 내려가서 배를 타야 하는데 완도, 여수, 부산의 옵션이 있었다.

완도는 조금 작은 도시 같고, 부산은 돌아오는 길에 여행을 하고 싶었고, 가운데 있는 여수가 어쩐지 좋아 보여 여수에서 제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오토바이로 검색해보니 8시간은 걸렸다. 하루 만에 가는 것은 무리가 될 것 같아 중간중간 도시에서 쉬어가며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가까운 곳에 즐겨찾기 표시가 되어 있는 충주가 보였다.



<충주 수안보 온천 파크 호텔>

우리가 결혼하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천연 온천수가 나오는 호텔에서 꼭 결혼하고 싶어요!" 였던 것은 아니고

이 호텔 산책로에 있는 <성봉채플>이라는 작은 교회 앞마당에서 야외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둘 다 야외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우연히 누군가 찍어 올린 드론 영상에서 숲 속에 둘러 쌓인 작은 교회를 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결혼하는 우리를 상상해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전 답사를 갔고, 하루 묵으며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호텔 지배인님을 만나 견적도 상세하게 받았다.


둘 다 연고지가 서울, 경기여서 갑자기 충주(?)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반응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내내 작은 교회 앞마당을 떠올릴 때면 결혼을 약속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할 곳을 찾아갔던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첫 번째 목적지는 충주 수안보 온천으로 정해졌다. (간 김에 온천도 하고 때도 팍팍 밀고 새 출발을 하자!라는 생각도 있었다.ㅎㅎ)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것 치고는 가벼운 짐을 가지고 몇 주는 돌아오지 않을 집에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 하늘이 이렇게 맑았었나?'

서울을 빠져나와 강을 따라 달리니 하늘도 강물도 푸르렀다.

이렇게 맑고 좋은 4월의 공기와 온도와 찬란한 색채를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마음이 먹먹하다가 이내 그래도 오늘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작은 스쿠터에 둘이 몸을 싣고 서울 밖으로 밖으로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홀가분해졌다.


봄을 맞아 여기저기서 피어난 연초록 이파리들 덕분에 가까이에 가로수도 멀리 보이는 산도 파릇해 보였다.

봄의 시작과 여행의 시작에 이래저래 감탄하며 느릿느릿 달린 덕에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수안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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