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Study #번외. 은행 영업 체험기
본의 아니게 요즘 12시에서 4시까지 집 근처 은행에서 영업하는 일을 하게 됐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은행에서 주최한 공모전의 큰 상금에 눈이 멀어, 친구와 아이디어를 하나 내서 덜컥 출전하게 됐다. 공모전은 A은행에서 새로 출시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형식이다.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공모전 이벤트 페이지에 우리 아이디어를 올린다. 그리고 해당 앱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공모전 페이지에 올라온 아이디어 중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에 좋아요를 누르는 형식. 좋아요와 댓글을 A은행 고객들로부터 많이 받을 수록 수상에 유리한 구조다.
함께 출전한 친구와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출한 아이디어에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카카오톡을 통한 지인 영업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고,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도 영업을 해야한다는 결론으로 대학 근처의 은행을 찾아가게 됐다. 해당 지점에 찾아온 고객분들의 앱 신규 설치를 도와주고, 지점 코드를 입력해 지점 실적을 쌓게 해주는 대신, 우리 공모전을 영업할 기회를 달라는 제안을 했다. 지점장님은 흔쾌히 OK 해주셨고, 그 덕에 다이내믹한!! 은행에서 다이내믹!!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됐다.
이번 경험의 목적은 사실 공모전 '좋아요'지만,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다 마주한 어느 정도의 상처들을 신규 서비스 설치 유도 프로모션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응을 어느 정도 정리해 보는 기회로 이용하면서 치료하고자 한다.
혜택에는 관심이 있지만, 새로운 앱 자체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유형이었다. 새로운 앱을 학습해야 한다는 부담감 자체가 엄청 크게 느껴지시는 듯 했다. 앱을 사용하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혜택을 듣다가도, 핸드폰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야기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미 금전적 헤택을 얻기 위해 다른 서비스들을 적극적으로 다운 받아 보았지만, 이용법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경험이 누적된 상태라 '새로운 서비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시는 느낌이었다.
경제적 혜택을 분명히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드리고, 따라하실 수 있을 정도로 사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하는 경우에 앱 다운에 동의하시는 유형이다. 이미 여러 금융 서비스들의 앱을 다운 받았고, 해당 금융 서비스들을 통해 나름대로 생활 속 혜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쓰고 있는 경우였다. 1유형의 어르신들과는 나이 대가 비슷했지만, 1유형에 비해 주로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보통 젊은 세대에서 새로운 IT 서비스에 대한 접근 장벽이 낮은 성별은 주로 남성!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재밌는 현상이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중국 출신이었다. 이들은 기프티콘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를 직접 찾아와서 앱을 대신 다운 받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재미있었던 건 할리스, 투썸 무료 커피보다도 설빙 2,000원 할인 쿠폰을 더 선호했다. 유학생 친구들끼리 온 경우에는 가끔 본인 인증이 되지 않아 앱을 설치하지 못하는 사람이 간혹 한 명씩 섞여 있는 그룹들이 많았는데, 앱 설치에 성공해 기프티콘을 받는 친구를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초기 마케팅 비용을 태우는 목적이 온전히 앱 다운로드 건수 자체의 증가라면, 기프티콘을 활용해 외국인 유학생을 끌어오기가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우리의 접근 자체를 기피하는 유형이었다. 서비스 안내문을 준비해 사전에 인쇄, 코팅해 들고 갔는데, 코팅한 안내문을 들고 있는 우리를 발견 하자마자 가장 먼 자리의 의자로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굴하지 않고 다시 찾아가는 수고를 감수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핸드폰에 깔려있는 앱이 많다는 대답도 반복해서 들었다. 더불어 프로모션 참여를 위해 여러 신규 서비스들을 다운 받고,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한 탓에 비슷한 종류의 프로모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 보였다. 금융권 자체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실망감이 누적된 상태로 해석 가능할 것 같기도. "예전에 비슷한 거 해봤는데 별로여서..."와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커플의 경우에는 찾아가서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하면 서로의 눈치를 잠깐 살피다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 쪽이 먼저 OK를 외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서로 충분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이이고, 여전히 그 호감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이들은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냥 불쌍한 학생들이 와서 부탁하고, 겸사겸사 기프티콘을 받을 수도 있기도 하고, 기프티콘은 이미 한 번 받아서 또 받지는 못하지만 그냥 불쌍하니까(...) 도와주는 유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었고, 앞으로 나도 이런 분들 본받아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별개로 지점이 직장가가 아닌 곳에 위치한 특성도 있겠지만, 오후 열두시부터 시작되는 점심 시간을 포함해 평일 오후에 은행을 방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 세대, 혹은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대학가 주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의 젊은 사람들은 거의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모바일 뱅킹 환경이 발전하는 상황과 완전히 무관치는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만 조금 더 힘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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