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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ks Feb 14. 2021

[여행단편] 만휴정

남는 건 사진 뿐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촬영지라고 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이동경로에 있어서 들러보기로 했다. 드라마 촬영지니까 이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들렀는데, 차를 주차하고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었다. '이렇게까지나 인기 있는 곳이었나..?' 싶었는데, 만휴정에 들어가려는 줄이었다기 보다는, 만휴정으로 들어가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다. 


이 다리가 그 다리

사진 한 장의 위력


만휴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다리 위에서의 찍히는 이쁜 사진이 중요한 거였다. 대부분의 샷은 비슷했다. 커플 또는 혼자, 만휴정을 배경으로 다리에 걸터앉아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나는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뭘 저렇게까지 줄 서가면서 사진을 찍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찬찬히 그 모습들을 지켜보다보니, 음- 즐거워보였다. 만휴정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소비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사진을 이쁘게 찍으려면, 비탈진 바위를 좀 내려가서 찍어야 했는데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긴 줄을 서서 찍으려니 뒤에 서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모르는 내 앞에 서있던 사람의 사진을 이쁘게 찍어주기 위해 계곡 아래까지 아슬아슬하게 발 디디며 내려가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찍히는 사람도 찍어주는 사람도 즐거운 순간을 가져가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누군가는 이쁜 사진을 찍었다는 기쁨을, 누군가는 이쁜 사진을 카메라에 남겼다는 기쁨을 가져가겠네. 그리고 나는 찍고찍히는 그 순간을 재미있게 구경하는 뒷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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