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나쁜 일은 있지-만 여행 가고 싶다.
어쨌든 여행은 낯선 곳에 이방인으로 있는 순간이니,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건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거나 불쾌한 순간들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큰 사건사고 없이,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만큼 즐거운 추억이 나쁜 기억을 덮었다는 것.
길을 가는데 어떤 남자가 따라붙었다. 영어가 어설프니까 처음에는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내가 맞게 이해한건가, 설마?' 싶었다. 그 사람의 말을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늘이 참 맑지? 파란색 좋아해? 내 팬티 파란색인데? 너네 어느 호텔이야? 호텔 가서 내 팬티 구경할래? 너 팬티는 무슨 색이야?”
뜬금포로 말끝마다 팬티팬티거려서, 팬티랑 비슷한 다른 단어가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맥락없이 기승전팬티였다. 못 들은 척 못 본 척 빠른 걸음으로 걸어보거나, 눈동자에 욕을 가득 담아 쳐다보거나, ㄲㅈ라는 뜻의 아는 영어를 막 내뱉어봐도, 그 사람은 짧은 영어로 엄청 조잘대며 따라붙었고 결국 음식점에 들어가서야 따돌릴 수 있었다.
재래시장에 놀러갔었는데, 어떤 못된 손이 못된 짓을 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출퇴근 지하철 시간만큼 사람이 많아서 불쾌해하며 그 사람을 피하기 위해 대충 아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눈치껏 갈 줄 알았는데, 가게 밖에서 빤히 쳐다보며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그 눈빛이 섬찟했다. 말이 안 통하니 가게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고. 결국 친구가 나쁜 원숭이 쫓아내듯이 웍!웍!하면서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더니 겨우 사라졌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바로 그날,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주변에 까불까불한 히피(?) 친구들이 소란스럽게 굴었다. '어느 나라나 중학생들은 발랄하군'하면서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지하철이 도착해 문이 열려서 타려는 순간, 히피들이 끼어들면서 가까이 서있었던 나랑 친구가 순식간에 멀어졌고 내 주변은 그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서 앞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손으로 잡았는데 가방이 열려있었다. 손이 스쳤던 것을 봐서는 지갑을 가져가려던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방을 잡는 순간 그들은 투덜대며 내렸다. 이 모든게 열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울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주려고 한 마디씩 해줬다..만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는걸.
공원에 앉아 볕을 쬐는 것을 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 근처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자연스럽게 “weeds?”라고 물었다. 내가 그때 한창 보던 미드 제목이라서 그게 마약인 줄 알았지, 아니었으면 대화할 뻔 했다. 어쨌든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나중에 미국에 살다온 친구한테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O_O) 이런 표정으로 한소릴 들었네.
차에 치였었다. 본네트에 살짝 튕기고 바닥으로 넘어졌는데, 넘어지는 와중에 아이고 이걸 영어로 뭐라해에에-라는 걱정이 같이 들었다. 암튼, 나를 친 운전자가 나보다 더 놀래서 엉엉 우는 통에 우리는 의사소통 같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늦게 나타난 친구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니 “아 뭐야 몰라 됐고, 일단 카페로 가자.”고 해서 나만 데리고 카페에 갔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니 (0o0) 이런 표정으로 “아, 진작 말을 하지!”라며 타박을 했다. 말을 하긴 했지. “흐끅 촤 흐끜 에흐흐흐흐흑 취 흐끄그그극여 써후흐흐흐흑” 정도였겠지만. 다행히 하나도 다치지 않아서, 별 일 없이 넘어갔었다.
이런 일들을 곱씹을만큼 여행이 가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