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블리츠 스케일링
스타트업계에는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성장곡선이 있다. J-carve라고 한다. 스타트업은 J자를 그리듯이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은 그 맥락과 통한다. 새롭고 큰 기회를 잡기 위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위험과 비용과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blitz-scal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과 시장을 지배하기 전에 망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그 둘을 가르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성장하는 단계마다 경영 방식을 진화시키고 그 단계에 맞게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p.219)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과 같은 사례를 보면 블리츠 스케일링이 왜 필요하고 어떤 경우에 적절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적용하려면 여러모로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가족, 부족, 마을, 도시, 국가로 성장 단계를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와닿은 비유는 해병, 육군, 경찰이었다.
해병은 해안을 맡고, 육군은 땅을 맡고, 경찰은 나라를 지킨다고 역할을 나눠보자. 이때 해병은 혼란한 현장 상황을 처리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육군은 해안을 벗어난 뒤 영토를 빠르게 점유하고 확보하는 방법을 아는 스케일업 사람들이다. 이미 점유한 땅을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경찰은 조직이 어느 정도 컸을 때 안정을 우선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p.223)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 빠르게 시장을 선점해서 1위 사업자가 되는 것도 좋다. 산업이 개화하는 단계에 따라 fast-follower가 되어 1위 사업자가 차마 메꾸지 못한 시장의 니즈를 채워주며 시세를 확장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차별화된 무언가를 제공하려면, 경쟁자 대비 우리 회사를 고객에게 인지시키려면, 블리츠 스케일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회사가 가족 단계에서 국가 단계로 커지는 과정에서 경영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요소들을 정리해두고 있어서 재고할 부분이 많았다.
책에서 제시한 여러 전략 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많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면-
'부적절한' 관리도 때로는 용인하라. 속도를 내기 위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직원들을 놀라게 하거나 기습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p.305)
불길(리스크)이 타오르게 내버려 둔다. 경우에 따라, 스타트업에서 발생한 불길은 돈을 잡아먹기는 하지만 고객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p.319)
고객을 무시하라. (저자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이 너무 바빠서 고객 서비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없었다. 그 때문에 고객들의 불만을 방치했다. 하지만 어떤 불만사항도 거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p.327)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엄청난 성장통을 겪는다. 그러다보니 나 같은 조직원 입장에서는 성장의 짜릿함만큼이나, 불안함, 허무함도 컸다. 지난 세월을 복기하며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해보고 싶은 거리들이 많았다.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블리츠 스케일링을 하다보면, 리소스가 분산되어 지금까지 어느 정도 끌어올린 사업의 성과가 되려 하락할 수 있다. 현재의 사업을 잘 유지, 개선시키면서 또 새롭게 스케일링을 하려면 조직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블리츠 스케일링을 하다보면 기술적 부채, 다양성의 부채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럼 외적인 성장만 가져오고 내적인 성장은 어려운 게 아닐까? 부적절한 관리가 만들어내는 직원들의 불만과 불안은 결국 이탈로 이어져 조직의 성장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영향력이 큰 리스크와 적은 리스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SNS가 발달된 경우에는 고객의 작은 불만도 큰 불씨로 이어지지 않을까? 등, 등. 아마 정답은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테지만.
치열하게 성장한 회사들을 사례로 언급하고 있어서, 블리츠스케일링에 대한 노하우 외에 여러 회사들의 스토리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앞서 브런치에 발행한 '사업의 철학'이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법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SeriesA 정도 된 기업이 읽어봄 직 하다.
읽으면서 사실 '왜 우리는 이렇게 성장에 집착할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현상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왜 항상 작년보다 더 성장하려고 하고, 스타트업은 심지어 J자 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하려고 할까? 성장만이 정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페이스가 있듯이, 기업도 자기 페이스가 있다. 하지만 여러 페이스 중에 J-carve를 그리는 성장을 선택한 기업이라면, 그 J-carve를 내부조직원들의 영혼을 탈곡기처럼 탈탈 털어서 멱살 잡고 끌어올릴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고 '잘' 해야 할까를 이 책을 통해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