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의 소소하고 딥한 이야기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라는 팟캐스트는 현재 내가 Hope and Art Sstudio라는 미술치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 다음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올해 초여름에 지인의 소개로 만난 작가님과 의기투합해서 지난 몇 달간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편집을 했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소개하는 수준의 첫 방송밖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벌써 많은 녹음 분량이 나왔음에도 실제로 편집이 끝나고 나온 방송을 들어보니 어설프고 부족한 것만 귀에 쏙쏙 들어와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사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실제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마저도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미국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눈을 감고 코끼리의 부분만을 만져 코끼리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코를 만지면 길쭉하고 귀를 만지면 얇고 넓어 보이고 상아를 만지면 매끈하고 뾰족한 코끼리를 상상하게 되는 것처럼 미국의 어느 곳에 어떤 목적과 구체적 경험을 가지고 어떤 인연을 만들며 사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어느 나라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너무나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며 주마다 독특한 문화와 법을 가지고 있어서 동부와 서부는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외에 정말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도 도시와 서벌브의 삶은 또 다르다. 그런데 유독 이런 다양한 문화와 제도 속에서 비슷한 고민과 삶의 패턴을 가지고 미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미국 속의 한인 사회가 그렇다.
최근에 나오고 있는 다소 진취적인 양육서나 교육서를 읽어보면 미국의 학자들은 중산층 이상의 미국 부모들의 평가와 성취 위주의 교육, 필요 이상으로 아이들을 컨트롤하고 혹은 보호하는 양육 형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의 교육 또한 지난 몇십 년간 이런저런 변화를 겪어왔다. 비교적 평가에서 자유로웠던 미국의 초등 교육은 2000년대 초반 'No child left behind' act 그리고 오바마 정부 때 시작된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중심의 교육으로 인해 점점 평가와 성취 위주의 교육으로 바뀌어갔다. 미국의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바뀌어가는 교육 환경에 적응하랴, 높아져만 가는 학교의 학업 기준에 아이들을 맞춰주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스포츠나 악기 등의 과외활동도 프로 수준으로 따라갈 수 있게 서포트하랴.... 한국 못지않은 스트레스와 책임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들은 그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뛸 뿐이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Helcopter mom'이니 'Micro-managing mom'등등의 부정적 수식어를 붙이고 이런 부모들의 양육방식이 아이를 결론적으로 어떻게 망치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의 미국 교육의 현실이다. 미국의 곳곳에는 한국의 대치동을 방불케 하는 숨 막히는 경쟁과 사교육의 거대한 힘이 군림하고 있다. 미국에 더 나은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편하고 자유로운 교육을 찾아왔다는 한국 부모님들의 고백을 가끔 들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분명 미국에는 대치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섞여 거대한 나라를 이루는 미국은 점점 그런 추세로 변해가고 있으나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만의 뚝심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있는지는 솔직히 미지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더 작은 사회를 사는 한국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 더 서로의 경제적 능력과, 자녀의 학업적 성과를 기웃거리며 의도치 않게 비교와 경쟁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쩌면 문화적 언어적 한계 때문에 더욱더 옆집 한국 이웃의 성공 비결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 넓은 땅 곳곳에 작은 대치동 들 이 높은 요새처럼 군림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도 학군을 신경 써야 하고, 선행 학습을 시켜야 하며, 방대한 학교 숙제를 내 일처럼 도와주고, 대학교에 가는 모든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써가며 정보를 취합하고 아이를 볶아야 한다. 게다가 툭하면 터지는 총기사건과 청소년의 마약 문제로부터 우리 아이가 노출될까 걱정과 불안은 우리의 숙명이다.
이곳에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온 부모들도 결국은 자식에게 좋은 길 (우리 생각에),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새 대학을 위해 숨 가쁘게 뛰어가는 마라톤에 합류해 숨을 헐떡이는 자신과 아이들을 마주한다.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슬프다. 한국에서도 숨 막혔는데 이곳에서는 더 숨이 막힌다. 대학 이후에는 취업, 취업 이후에는 뱀부 실링 (bamboo ceiling: 아시안들이 직업 전선에서 승진하는데 느끼는 한계), 이후에는 결혼에서 겪는 문화적 갈등... 어느 곳 하나 쉬운 게 없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미국에 가서 사는 삶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 내는 이야기 일 수 있다. 어디에서든 부러움을 사는 삶의 이면에는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처절한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이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이 현실을 넘어서서 자기 주도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 엄마들이 '미국까지 와서' 자녀를 잘 키워보고자 하는 열정과 꿈 그리고 그만큼 큰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대학을 잘 가는 정보보다는 어쩌면 미국이라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에서 어떻게 나와 내 아이가 서로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발견하며 과열된 경쟁과 왜곡된 욕심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건강한 나'를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 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 필요한 용기와 공감과 위로가 담기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어떤 포맷으로 어떤 정보와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먼저 담아두는 이유는 절대 나의 첫 마음이 변질되거나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