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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ies Nov 09. 2018

밤의 콜로세움은 낮보다 아름답다, 이탈리아 (3)

나폴리, 폼페이 그리고 밤의 콜로세움

다시 한번 얘기 하지만 아팠기 때문에 바티칸이고 콜로세움이고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나절 내내 약을 먹고 앓고 난 뒤, 조금 늦은 저녁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당기고 사과같이 상큼한 과일이 당겼다. 

아직 살짝 아린 것 같기도 하고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게스트 하우스 근처의 마트로 가보기로 했다. 유럽의 마트를 가보면 진짜 그 나라에 여행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종류지만 모양은 다른 과일이나 야채를 보면 그 나라 사람의 진짜 일상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듯 작고 푸른 사과와 귤 한 묶음을 사고는 돌아와서 겨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친구와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와 바로 옆에 있는 폼페이를 방문했다. 나는 살면서 내가 폼페이를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방문할 당시는 또 별다른 생각을 못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내가 폼페이를 다녀왔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폼페이는 모든 것이 허물어진 채로 당시의 비극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나 학교 역사 수업 시간에 들었던 짧은 지식만 가지고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나 슬픈 참극을 상상해 볼 뿐이었다. 건물이 무너져 사라지고만 비어버린 공간들과 그곳을 다시 채운 회색빛의 넓은 하늘이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을 들게 했다. 


몇 천년 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고대 도시 폼페이,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도 보인다.


폼페이의 현장을 모두 다 돌아보고 나오고 서야 그 뜨거움 속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다시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아픔과 두려움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그곳을 돌아보며 친구와 나는 별다른 말 또한 할 수 없었다. 


그 날의 나폴리에서 폼페이까지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늦은 오후, 이탈리아 남부의 지중해 위로 붉은 태양이 다시 지중해 아래로 내려가려 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 태양은 가까웠고 붉은색을 더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밤이 가려고 하는데, 친구와 우연히 밤에 콜로세움을 보러 가게 되었다. 로마에 오자마자 대낮에 한 컷씩 찍었지만 친구가 한번 더 가보자고 해서 늦은 밤이었지만 같이 가게 되었다. 


밤이라고 해서 모든 불을 꺼놓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둠 속 주황빛으로 빛나는 콜로세움을 볼 수 있었다. 위로는 달이 콜로세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아쉽다는 듯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서로 찍어주느라 바삐 움직였다. 


밤의 콜로세움은 정적 속 홀로 빛나 아름다웠다. 많은 관광객들과 앞으로 지나다니는 차들 때문에 경쾌하고 분주한 모양이었던 대낮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오자고 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밤의 콜로세움이었다. 내부까지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빛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기 위해 떠나기를 망설이다 곧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으로 나는 이제 이탈리아를 마지막으로 나의 집, 한국으로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부딪혀야 할 현실적인 문제를 마음 한편에 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남은 학기를 마저 다녀야 하고 그 외에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처럼 그 길만 따라가면 되는 일로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해야 할 목록에 있는 표면적인 리스트에 불과했다. 나는 유럽에 있는 내내 정말 내가 원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 뭘까 고민을 했다. 그것은 유럽의 여러 다양한 길들을 가보고 걸으며 이어지는 고민의 여정이었다. 


그때의 나의 표면적인 지도 위는 명확했지만 여전히 나는 뿌연 안갯속 두려움과 불확실함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다. 다만 이탈리아의 마지막 날 밤에 본, 아름다운 밤의 콜로세움처럼 나의 지도 위의 진짜 빛을 찾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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