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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Jul 07. 2021

내가 너의 옆에 있어 줄게

–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가 집을 떠난 후 언니들과 오빠들마저 차례로 떠나고 여섯 살의 카야는 아빠와 둘이 남는다. 그 후 알콜 중독에 노름을 일삼는 아빠마저 떠나버리고 혼자 살아남는 법을 익혀간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후 습지의 생명체들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카야 앞에 테이트가 나타난다. 카야는 다정하며 세심한 테이트를 통해 글자를 배우고 학문의 세계로 들어선다. 대학에 합격한 테이트가 떠나버린 후 절망하던 카야는 체이서를 만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체이서는 카야를 배신하고, 학자가 된 테이트가 다시 카야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사건. 여섯 살의 카야가 홀로 자라나 어른이 되어가는 내용이 체이스의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을 찾아가는 시점과 교차되어 전개된다. 


카야는 자신이 혼자라고 여기며 살았지만 카야 곁에는 늘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야의 어린 시절부터 쭉 도와주던 점핑 아저씨와 그의 부인 메이블, 어린 카야 모르게 거스름돈을 더 내주던 위글리 식료품점의 점원 세라 등이 그들이다. 체이스의 살인범으로 지목된 카야의 재판에서 카야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그들 외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내게 호의를 갖고 은근히 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 외로움을 이겨내게 도와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외로운 우리가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아마존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다. 그의 글 속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빈민촌 해안가의 습지는 생명력을 가진 자연으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한 주인공 카야는 습지의 생물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사랑 이야기와 법정 스릴러, 성장소설, 생태소설의 성격을 두루 갖춘 이 소설은 두꺼운 분량을 단숨에 읽어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제목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대자연이 자연 자체의 순수함으로 보존되고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싶었던 카야의 소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과 달리 노스캐롤라이나의 사람들은 카야를 멸시하고 조롱할 뿐이다. 그들은 버려진 어린 아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수군거린다. 누구하나 어린 아이 혼자 살아가는 습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빈민촌의 버려진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계급과 계층, 인종, 그리고 인간에 대한 편견을 담담한 어조로 형상화하여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은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p267.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쏙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카야의 외로움을 체이스는 채워주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카야를 이용하고 버렸을 뿐이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연인들에게도 버림받은 카야는 또 혼자다. 외로운 카야의 곁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자연과 야만적이며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의 행태가 대비되고 있다.     



p300.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우리를 봐. 지금은 이렇게 서로가 있잖아. 내가 아이를 낳고 너도 아이들을 갖게 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인연의 끈이야. 그렇게 죽 이어지는 거지.


카야를 두고 떠났다가 어른이 된 후 돌아온 오빠 조디는 카야와 테이트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싫건 좋건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간다. 타인을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이 소설은 카야 주변의 사람들과 카야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줌으로써 절대 카야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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