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초복이 보름이나 남은 7월 초에 이미 한여름 날씨라 백일을 조금 지난 아이의 목이며 기저귀를 찬 엉덩이는 땀띠가 가라앉을 날이 없었다. 당시 우리집은 거금을 주고 에어컨을 들여놓을 형편이 안되던 시절이었다. 밤이 돼도 식지 않는 열기에 아이는 땀띠가 돋은 자리가 쓰라려 칭얼대고, 선풍기를 돌리며 부채질까지 해주느라 어른은 온몸이 땀에 젖기 일쑤였다. 가지 삶은 물을 식혀 수건에 적셔 땀띠에 발라주면 아이는 간신히 잠이 들곤 했다. 그해 여름을 생각하면 더운 날 불 앞에서 가지를 삶아내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5월인데도 아이가 태어나던 그해 여름만큼 덥다. 아파트 담벼락에는 5월 초부터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고, 치워두었던 선풍기를 꺼내서 돌리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됐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곳도 있다는데, 벌써 이렇게 더우면 한여름에는 어떻게 견딜까 생각하면 암담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면 꿀벌이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지고 이로 인해 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꿀벌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가 농약 사용과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수분을 옮겨주는 꿀벌이 사라지면 과일과 채소의 생산량이 20% 이상 감소한다고 한다. 곡물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식량 위기가 도래할 수 있고 인류의 생명은 위협을 받게 된다. 지구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이상기온 현상이 벌어지고, 기후위기는 꿀벌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위협한다.
이렇게 뜨거워진 지구는 우리가 자초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를 달구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9위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맺고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심각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도 온실가스를 증가시키는 주범 중 하나이다. 특히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배달음식량 증가로 플라스틱 사용량은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일을 지정해 놓은 공동주택이다. 어느날 평소와 달리 밤늦은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 놀란 적이 있다. 고작 2000세대에 불과한 아파트에서 매주 발생하는 쓰레기 더미가 이 정도인데 전 세계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넘칠 것인가. 거대한 쓰레기의 산 앞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이것들이 우리를 역습해서 다음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무엇인가가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자 공포가 몰려왔다.
환경 문제는 국가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지구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이다.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부터 조금씩 의식적으로 일회용품을 줄여가야 한다. 나의 지인 중에는 외출할 때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이가 있다. 그의 가방 속에는 텀블러, 스텐 빨대, 손수건이 항상 들어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받아들던 나는 자신의 전용컵에 음료를 담은 그와 마주 앉으면 부끄러워진다. 아직은 나도 반성하고 변화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런 지인들 덕분에 의식적으로라도 조금씩 바꿔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나와 우리, 그리고 지구를 생각하는 우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수백, 수천, 수만의 발걸음이 될 것이며 미래의 지구는 지금보다는 분명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오랜만에 근교로 여행을 떠나던 날, 텀블러를 챙겨 가방에 넣는 딸아이를 보면서 건강한 생각을 가진 젊은 세대가 있어서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디 이렇게 더운 여름은 앞으로는 오지 않기를, 앞으로의 세대는 사계절을 고루 느끼며 건강한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램한다.
Photo by RetroSupply on Unsplash
[출처] �2022 좋아서 하는 책쓰기 2기 모집합니다_독립출판/에세이 쓰기/온라인글쓰기모임|작성자 권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