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리젠시아 커피 (Intelligentsia Coffee)
미국의 커피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럽의 커피보다 못하지 않을까 단순 무식하게 생각했었다.
기껏 정성스럽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큰 컵에 그득 넣어 마시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탄생했다는 옛날 옛적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있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음식은 본고장이나 본점을 최고로 치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기인한 내 편견은 인텔리젠시아의 라테 한잔으로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미국이 연간 소비하는 커피의 양은 단연 세계 1위이다. 누구나 다 아는 전 세계 체인인 스타벅스는 세계 어느 지점에 가든지 고른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고른 품질유지를 위해 많은 부분을 자동화로 바꾸고 획일화된 커피를 대량으로 생산한다.
그 정 반대의 지점에 스페셜티 커피가 있는데, 까다롭게 원두를 고르고 직접 로스팅해 전문교육을 받은 바리스타가 한잔 한잔 정성스럽게 내려준 커피를 말한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스텀프 타운, 카운터 컬처, 인텔리젠시아다. 애초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단어가 그 세 개의 회사 창업주들이 모여 재정의한 단어라고 하니 한잔의 음료에 담은 진지함이 이보다 더 진정성이 있을 순 없다.
인텔리젠시아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시카고의 어느 한산한 거리에서 1995년에 조그마한 로스터리 카페로 시작했다. 창업자인 더그 젤(Doug Zell)씨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피넬리 커피에서 바리스타와 매니저로 일을 한 뒤 본인의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와 매장을 오픈한 것인데, 맛있는 커피에 대한 더그 젤 씨의 남다른 열정은 완성된 커피뿐 아니라 원두까지 옮겨가 생산지에서 원두를 직접 가져오는 도매사업까지 가게 된다.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Direct Trade)시스템은 그렇게 인텔리젠시아로부터 탄생했다고 한다. 중간상인 없이 생산자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원두를 구매하는데, 수출업자가 아닌 생산자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공정거래(Fair Trade)와 구분된다.
인텔리젠시아의 원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길고 복잡하지만, 여하튼 원두 산지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좋은 원두의 생산과 로스팅에 힘을 쓰며 현재까지 뉴욕 내 커피를 내어주는 많은 카페나 호텔, 레스토랑에 로스팅한 원두(스페셜티 원두)를 납품하고 있다는 걸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러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텔리젠시아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인텔리젠시아 카페를 찾아가던 날은 마음이 살짝 들떠있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스산하게 바람이 불던 가을의 늦자락이었는데, 하이라인을 산책하는 동안 체온이 떨어져 꼭 일부러 그런 것처럼 따뜻한 커피가 간절해졌다.
하이라인의 중간쯤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하이라인 호텔이 있다. 그리고 그곳 1층에 ‘인텔리젠시아’가 있었다.
호텔과 공간을 함께 쓰고 있어서인지 입구에는 하이라인 호텔이라는 이름만 커다랗게 부각되어 있고 인텔리젠시아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덕분에 제대로 잘 찾아온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 들어갔다 나가기를 두어 번 한 뒤에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안쪽으로 넓게 야외 카페가 펼쳐진다. 아직 핼러윈 인테리어를 치우지 않아서 바닥에는 오밀조밀 호박들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왼쪽 편 끝에는 조그만 트럭이 하나 서 있는데 낯익은 인텔리젠시아의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트럭을 열고 야외 카페도 오픈할 텐데 오늘은 스산해서인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살초롬한 조명이 어둑어둑 내부를 비추고 있다. 상상 속의 인텔리센시아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꾸며 화려하고 힙한 공간이었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지역 분위기에 맞춰 인테리어 같은 것들을 유연하게 녹이기 때문에 진열된 원두 봉지 같은 것에서 인텔리젠시아의 로고 같은 것이라도 발견하지 않는 한 매장들의 통일된 느낌은 찾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로스팅한 원두를 전시하고 판매도하는데, 인텔리젠시아의 카페들은 그 자체로 로스팅 원두의 쇼룸 기능을 하고 있어서 맛을 보고 마음에 드는 원두를 구입해 갈 수 있다.
하이라인의 인텔리젠시아는 오래된 공간을 빈티지풍으로 가꾸어놓은 느낌이었다. 자잘한 타일들을 붙여놓은 바닥 위로는 차분한 색상의 카펫을 깔고 얕은 대리석 테이블을 놓았다. 인테리어용으로 놓아둔 검정색 타자기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소파석도 있고 바석도 있지만 앉을자리는 그다지 않지 많다.
탁 트인 목장에나 어울릴 것 같은 키가 크고 촌스럽게 생긴 빨강머리 아가씨가 어젯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다는 듯 살짝 찌푸린 얼굴로 주문을 받는다. 단출한 몇 가지 커피 메뉴 중에 나는 라테를 골랐다. 매일 어떤 원두를 드립으로 제공할지 그날그날 바리스타들이 결정해서 내어놓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숙련된 바리스타가 신중하게 고른 오늘의 싱글 오리진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은 라테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멋지게 라테아트를 그려내는 남자 직원의 손놀림을 보고 있으니 저건 틀림없이 맛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잠시 뒤 조그만 컵에 찰랑찰랑 담아 완성한 라테를 웃으며 내게 건넨다. 나는 라테 잔을 받아 소파석에 앉았다. 너무 낮은 테이블은 의외로 쓸모가 없어서 대신 소파의 넓은 팔걸이를 테이블로 사용했다.
실내에 울리는 사람들의 낮은 수다 소리가 추적거리며 비가 오는 날은 자장가처럼 들린다. 커피를 뽑아내는 기계의 소음이 그 자장가를 거든다.
게다가 커피도 아주 맛이 좋다. 진득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어찌나 깊은지 읽고 있던 책을 놓고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커피잔을 다시 잡으며 라테를 음미하고 있었다.
뉴욕 한가운데에서 여유 부리며 뉴욕 최고의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같다.
위치 : 180 10th Ave, New York, NY 10011
전화 : 212-933-9736
오픈 : (일-목)07:00-18:00, (금-토)07:00-19:00
홈피 : www.intelligentsiacoff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