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하는 부모를 보며 자연스럽게 철이 먼저 든다
그 날 아버지는 서럽게 우셨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울었을 때가 언제더라.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를 살면서 아버지가 우는 것을 단 한 번 보았다.
중학생이었을 때. 아빠는 그 날 어째서인지 술을 드시고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현관에 지쳐 쓰러지셨다. 놀라서 뛰어간 그 날 아빠의 눈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아빠는 엄마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말하고 서럽게 울었다. 시뻘게진 아빠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땐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엄마를 아프게 해서 떠났는데 왜 이제서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지? 그런 아빠가 밉기도 하면서, 부족한 형편으로 가족을 혼자 책임지는 아빠에게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흐른 눈물을 닦았다. 아빠를 부축해서 이불로 옮겨드리고, 밤이 한참 깊어진 후에야 잠들었다.
다음 날,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눈치를 살폈다. 전날 아빠가 울었던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걱정됐다. 하지만 아빠는 평소처럼 나에게 웃으며 장난을 쳤고, 나는 그 날따라 힘든 일이 있으셨나보다 하며 지나갔다.
지금에야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아빠는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할머니는 아플 때마다, 나는 서럽고 힘들 때 울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 날 이후로 절대 우는 법이 없었다.
아빠는 언제 어디서 눈물을 훔치셨을까? 할머니와 내가 잠들고 난 후, 혼자 가게를 정리하면서 였을까? 취객이 아빠 가게에서 깨진 소주병을 휘둘렀던 날, 할머니랑 나를 지키려다가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던 날이었을까? 아파도 돈을 아끼느라 제 때 병원에 못 갔을 때?
아빠는 늘 울음과 서러움을 참으며 살아야 했다. 사랑하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아빠는 힘들게 우리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엄마와 아빠를 보며 자연스럽게 철이 먼저 들었다.
우리 엄마 진짜 예뻐.
어엿한 아가씨로 자란 후에, 나는 엄마를 가장 신경썼다. 아빠로 인해 상처받은 엄마의 정신과 마음을 낫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아빠와 연락을 끊었지만, 나에게는 자주 전화했다. 어린 딸을 걱정한 어미의 마음이었을까.
처음으로 대기업에 입사하고나서, 아빠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을 꽃다발을 안겨주기도 했다. 엄마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꽃다발을 받고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박수치며 말했다. "우리 엄마, 진짜 예쁘네! 하하!"
나를 낳고나서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엄마에게 죄송해서. '얘는 비싼 곳에 왜 자꾸 데려와' 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엄마를 모시고 뷔페에 자주 갔다. 아빠를 대신해 사과하는 마음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보너스를 엄마에게 드리기도 하고, 드린 돈을 다시 내 계좌로 입금하는 엄마때문에 명품백을 몰래 사서 엄마 손에 꾹꾹 밀어넣었다. 하지만 어쩐지 엄마의 온전치 못한 건강을 볼 때마다 아빠가 미워졌다.
엄마, 미안해 많이 아팠지
어버이날에 아빠에게 드리는 명품 셔츠는 엄마에겐 비밀로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드린 선물은 아빠에게 비밀이었다. 나는 중간에서 엄마,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어쩐지 '사랑을 받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에는 서툰 어른아이' 로 자랐다.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엄마에게 적었던 편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엄마, 내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랬으면 엄마를 지켜줄 수 있었을텐데."
그 시절 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빠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 지 마음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