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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Dec 04. 2016

1. 터키 여행(6)

갈길 잃은 여행 중에도, 파묵칼레는 인상적이었다.

2014년 초 터키 여행에 대한 조금 늦은 기록


일정이 3박 정도 더 남았지만 사실 기분적인 나의 여행은 이미 끝이 난 상태였다. 외롭고 추운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도 깨닫지는 못했지만 여행에 있어 계획이란 건 중요한 거다. 애당초 이스탄불에 대한 애틋한 마음 하나로 터키까지 날아왔다. 내가 상사병에 걸려 있던 것은 이스탄불이었지 카파도키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스탄불이 내게 뺨을 날린다면 나는 도리어 무릎 꿇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빌었겠지만 카파도키아는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뺨을 맞고 나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에 소비한 시간이 아까워졌다. 훌륭한 경치도 다이내믹한 액티비티도 한번 틀어진 맘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든게 처음부터 너무 준비 없이 긴 여행을 온 나를 탓할 수 밖에..


그 이후로도, 흩어진 마음을 더 어떻게 주워 담지 못하고 한번 더 혹한기 겨울밤을 겪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여전히 달래지 못한 채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파묵칼레

겨울에는 꼭 샌들 또는 슬리퍼, 그리고 수건을 준비하자.


게임이나 책에서 자주 봤던 것 같다. 파묵칼레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랐지만, 온천이라는 것과 그 특이한 모양새는 내가 알고 있던 그것과 같았다. 단지 그 규모가 내가 생각하는 것을 훨씬 상회했을 뿐이다.


저 흰것은 눈이 아니다

파묵칼레에 '파묵칼레'라고 하는 '버스회사'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 이 동네는 파묵칼레라고 하는 저 관광자원 하나로 형성된 마을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만큼 특징이 없어 보이는 마을이었고, 바꾸어 말하면 그 파묵칼레라고 하는 고대 유적지 하나가 저만한 마을을 형성하게 만들었으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유적지 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엄밀히 말하면 파묵칼레는 '세계 자연유산'인 석회 온천과 그 위에 존재하는 '세계 문화유산'인 고대 로마시대 유적지를 합한 지역이다)


그동안 추위에 질려 여행을 하면서도 온천은 따뜻할 거라는 기대감과, 머릿속 어렴풋이 존재하는 이미지를 직접 맞닥뜨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마을 외곽에서부터 흰 언덕을 따라 죽 걸어올라가면 된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눈치껏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따라나서니, 얼마 가지 않아 마을 외곽에 커다란 흰 산이 보였다. 꼭 눈이 덮여 하얗게 보이는 것 같지만 보자마자 그것이 파묵칼레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온천이라 그런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그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조금 놀랬다.


온천은 꽤 높은 곳에 형성되어 있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긴 언덕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되는데, 석회질의 돌이기 때문에 매우 미끄럽다. 그리고 온천물은 따뜻하지만 겨울에는 수원이 시작되는 위쪽이 아닌 이상, 아래쪽은 흘러 내려오는 동안 차갑게 식어 얼음장 같은 물이 흐르니, 맨발이면 발이 깨질 것 같은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발이 마치 깨질 것 같다.


경사는 하나도 가파르지 않았지만, 저 깨질 것 같은 발의 고통 때문에 잠깐 걷다가 물에서 발을 꺼내 주무르고 하는 식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올라갔다.(샌들이나 슬리퍼를 꼭 준비하자, 수건도 있으면 좋다)


발아.. 미안하다 ㅠ

다리를 거의 물에 잠근채 따뜻한 물의 온기를 받으며 올라가다 보면 꽤 그럴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계단식으로 층이 져서 그 오막한 그릇 같은 곳에 뜨거운 물이 담겨 김을 솔솔 뿜어내는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발은 뜨겁고 발빼고 다 춥다

아래는 뜨겁고 위는 추운 뭔가 이상적인 온천을 만났지만, 너무 춥다 보니 괜히 물에 몸을 담갔다 나오면 그 뒤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는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파묵칼레 사진을 볼 때마다 '아 그때 몸이 얼어붙더라도 들어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파묵칼레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오랫동안 남았다.


언덕을 따라 평평한 위쪽 지대 초반까지 형성되어 있는 석회 온천을 지나가면 꽤 넓은 평평한 지대가 나오고, 좀 생뚱맞지만 거기에는 고대 로마시대 유적지가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나도 방문하기 전에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제대로 형성되어 있다고는 생각을 못해서 조금 신기했다. 지금도 온천은 여러 가지 효능과 즐길거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고대에도 온천은 있었을 테니 그 근처에 어떤 형태로든 주거지 또는 위락시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형성된 규모를 보면 이곳 석회 온천은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온천은 아니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고대 유적지의 예술품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온천 바로 위에 이런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한 석회 온천을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갔었다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터키가 참 많고 다양한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만큼 복잡한 역사 위에 존재하는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으며, 또 로마라는 고대국가가 얼마나 넓은 지역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이나 다큐멘터리 또는 드라마를 통해 로마라는 국가를 많이 접했지만,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렇게 현장에 한 번이라도 서 있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파묵칼레 방문을 통해 더욱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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