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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ee Jun 17. 2024

걱정을 제3자로 바라보기

삶의 여백이 너무 부족해서 10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어요.


지난번 상담 이후로 뭔가 새로운 일이나 말씀하시고 싶은 거 있어요?

음.. 네 강의는 하게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제주도 워케이션도 갈 것 같고요. 그 외엔 특별한 건 없네요


잘 됐네요. 그런 일이 있을 때 어땠어요?

기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랬어요.


걱정이요? 어떤 걱정이요?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하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거나 수준이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요즘엔 걱정이 너무 진행된다 싶으면 그냥 무시해요.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뭐 어쩔 건데?’라고 생각해 버려요.

하지만 무시했기 때문에 걱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해요.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해요.

걱정은 저를 그 걱정될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시켜주기도 하잖아요? 반면에 답 없고 끝이 없는 걱정은 점점 저를 우울하게만 만들기도 한 거 같아요. 그래서 걱정에도 ‘좋은 걱정’과 ‘나쁜 걱정’ 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맞나요?


걱정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바라보시고 계신가요?

휴직을 했고, 이후에 강의도 하려고 하고, 워케이션도 가고, 또 워킹홀리데이도 가려고 하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는 주위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어요.

'워킹홀리데이에서 1년을 개발과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나, 아니면 그 외의 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네가 다시 개발자를 하고 싶은데 개발과 너무 멀어져 있어서 그 일을 좋은 직장에서 다시 하기가 어려워진다면 어떡하려고?’

이런 식의 내용이요.


그때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난 아직 29이고, 워킹홀리데이는 30까지만 가능해. 나는 대학 졸업 하자마자 직장에 들어갔고, 이제야 처음으로,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왜 이걸 해야 하지?”라고 묻기 시작했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고 딱 1년만 꿈꿔왔던 거 해보려고 하는 거야. 더 늦어서 조건이 안돼서 못하기 전에.

부모님도, 아니 3달밖에 만나지 않은 심리 상담사 선생님도 날 아시곤 이렇게 말씀하셔.

‘너 성격상 절대 그냥 아무 대책이나 생각 없이 놀지는 않는다. 아니라고 생각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돌아오거나 애를 쓰거나 최선을 다해서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애라고. 넌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으니 놀라고 해도 놀지 못하는 애인데, 그게 걱정되어서 한 발짝을 못 뗄 필요 없다’ 고.

넌 날 알고, 나도 날 알아.

걱정해줘서 고맙고, 나도 그런 생각이 안 들었던 게 아니야. 불안정성을 감수하며 능동적 자유를 선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욕망과 현실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상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있었고, 이제 조금 건강해져서 보이기 시작하는 거니까 다시 그런 걱정에 가두지 싶지 않아.

라고요.


하지만.. 저 역시 이런 걱정이 구석에는 웅크려서 계속 존재해요. 해소되지 않은 채로요.


걱정을 무작정 멈추고 보지 말자는 게 아니에요. 너(걱정)가 이런 말들로 나를 긴장시키고, 무기력하게 하고, 그래서 결국엔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구나.라고 ‘인식’ 하는 게 시작이고, 그렇게 해보자는 거예요.

H님은 우울이 깊어 보여요. 그리고 걱정과 나를 동일시하는, 그리고 뭔가 외부의 성패, 판단.. 등이 나의 가치를 말한다고 착각하는 사고방식이 너무 익숙해요.

걱정을 인식한다는 것, 걱정을 제3의 무언가로 본다는 것이 너무 헷갈려요.

걱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걱정도 ‘내가 하는 생각’ 곧 ‘나’ 아닌가? 내가 나를 인식한다? 아니 내가 걱정을 인식한다?  너무 긴가민가 해요.

그래서 앞으로의 상담에서

내가 삶에서 중요시하는 것, 걱정을 인식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아나가고 싶어요.


좋아요.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다음 상담 때 봬요.




지난 상담 이후 걱정 때문에 절여진 피클 같아지지 않기 위해 터득했던 방법은 ‘걱정 무시하기’였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어도 불안하다. 인생의 앞날이 불투명해도 불안하다. 어차피 불안하다면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하는 편이 낫다.'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는 순간 애써 외면하고 있던 걱정이 현실이라는 탈을 쓰고 다시금 찾아온다.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걸로 상담을 받았다. 결국엔 다시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거 같았다.

최근에 읽은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매드를 위한 안내서> - 제현주 지음에서는 이런 글이 나온다.

불안정성을 감수하며 능동적 자유를 선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욕망과 현실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그 좋아함이 어떤 조건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미리 고민해 두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언제고 떠날지 모르니, 발을 반쯤만 걸친 태도도 답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일이 주는 최고의 재미를 맛보지 못한다. 마음껏 사랑할 것, 그러나 객관성을 잃지 않을 것,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어디서건 의미 있는 일을 또 찾을 수 있다고 믿을 것, 일의 성패가 당신의 가치를 말한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 건강한 연애에 대한 모든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도 크게 틀릴 구석이 없다. 결혼에 골인하느냐가 연애의 의미를 판단하는 유일한 준거가 아니듯이, 이 일을 평생 가지고 갈 수 있을지가 일에 마음을 다할 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
막상 가서 살아보니 ‘이게 아니다’ 싶을 수도 있고 문득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땐 다시 도시로 가면 된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부족한 현실 때문에 어떤 꿈이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기선 ‘일’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이것을 ‘인생에 있어서 내가 한 모든 선택’이라고 바꿔서 생각했고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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