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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 Jul 13. 2024

첫 호두과자의 기억

갓 구운 호두과자와 갓 태어난 운전자는 그렇게 만났다.


홀로 운전대를 잡고, 첫 장거리 운전으로 떠난 도시는 양양이었다.



내가 사는 대전에서 양양,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3시간, 넉넉잡으면 3시간 반을 달려야 하는 곳이었다. 

연수를 받은지 일주일만에 홀로, 엄청난 장거리 운전을 앞둔지라 며칠 전부터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아찔해지고, 네비게이션 어플만 봐도 배가 살살 아파왔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온 몸 구석구석 느껴졌다.

분명 내가 선택한 여정인데, 과거의 나를 현재로 끌고 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렸냐며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나,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과거의 나는 순간의 짜릿한 선택을 맛본 후 팔짱을 끼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얄미운 녀석.
하는 수 없이 현재의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먼저 네비게이션 어플로 몇번이고 모의주행을 했다.
차선을 바꿔야 하는 구간을 보며 고시공부하듯 깜지를 써서 외웠다.
(사실 실전에서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졸리지 않을만큼 적당히 신나지만, 정신을 산만하게 하지 않는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선곡해 두었다.
다만 주행중에 플레이리스트를 바꿀 수 없다는 함정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 들를 휴게소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했다.
운전하면서 즉각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는 초보에게 꽤나 어려운 일이다. 어떤 휴게소를 갈지, 그 휴게소까지 몇시간 몇분이 걸리는지까지 미리 알아 두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그렇다, 나의 mbti는 J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운전에 잔뜩 긴장이 된 몸으로 전방을 주시하느라 금세 어지럽고 멀미같은 졸음이 쏟아지곤 했어서, 1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에 가기로 미리 결정을 했다. 


장거리 운전의 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까짓거, 뭐 일단 해!' 라는 생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일단 도로에 들어가면 뭐라도 하겠지.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고, 쌩쌩 달리는 차들이 가득한 고속도로는 핵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에 맞춰 속도를 내는 것도 무서웠지만, 차선을 바꾸는 것과 다른 차 앞에 끼어드는 건 더 무서웠다. 사이드미러로 뒷 차와 거리를 확인하며 계속해서 타이밍을 봤지만 지금 끼어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직 차의 중심을 잘 잡지도 못해서 거울로 눈이 가면 그 방향으로 차도 따라 휘청였다.
아마 그 시절 내 뒷차는 무척이나 불안했을테다.

그 때 내 앞에서 묵직하게 달리던 화물차의 두 눈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냥 내 뒤나 따라와.”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답답한 속도지만, 2차로에서 화물차를 따라 천천히 달리기.
1차로는 내가 참가할 수 없는 경주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잔뜩 긴장을 하고 달리다 첫 휴게소에 다다랐다. 혼자 오는 첫 휴게소였다. 

어릴 적에는 그저 뒷좌석에서 자다 깨면 몽롱하게 멈춰 있던 차들, 엄마 손을 잡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우동을 먹던 평범한 휴게소였지만 그날만은 새롭고 낯설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가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차들이 텅텅 비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는 끝자락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껐다.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신 인류가 되어 처음 땅을 밟는 느낌이 들었다. 발바닥이 찌릿찌릿 저렸다.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뚜벅뚜벅 휴게소로 혼자 걸어가는 발걸음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기적 어기적 쭈뼛거리며 화장실을 다녀오고, 매점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제한시간도 없으며 무언가를 고를 자유도 모두 나에게 있었다. 


호두과자 2천원짜리 하나 주세요.” 

갓 구워져 나온 뜨끈한 호두과자 봉투가 내 손에 쥐어졌다. 생각보다 더 묵직하고 따뜻했다.
원래 호두과자를 이렇게 많이 주는 거였던가? 그러고보니 호두과자를 혼자 사먹는 것도 처음이야.
웃음이 새어나왔다.
고요한 차 안에 들어와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불처럼 뜨거운 호두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뜨듯한 기운이 온 몸을 맴돌았다.

핫 뜨거, 하고 몇 개를 우물거리다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었다.


중요한 무언가가 내 안에 막 태어난 기분, 

그 기분은 나에게 갓 나온 호두과자의 맛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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