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놓아 운다, 쿠바
일상이 조금 달라졌다. 까사 수입을 위해 내 눈치를 보며,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주문을 매일 잊지 않고 묻는 까사 주인장에게 짜증나던 마음도 사라지고, 캐나다 달러를 환전(당시에는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환율이 좋다고 하여 미리 캐나다 달러를 준비해 감)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깜비오(환전소)에서 참을 인을 새기며 기다리는 일도 견딜만해졌다. 말레꼰 해변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낚는 낚시꾼들 곁을 기웃거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비교적 저렴하고 맛있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쿠바 음악을 라이브 연주해주는 레스토랑을 발견하여 점심을 여러 번 사 먹기도 했다. 비싸지 않은 로컬 레스토랑에서 럼이 많이 들어간 모히또를 2~3 쿡에 사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모히또를 즐겨 먹던 헤밍웨이-헤밍웨이 박물관- 그리고 안토니 할부지로 연결되는 몽글몽글하게 그립고 아련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쁘라도 거리에서 마주친 거리의 악사가 영어로 다 알아듣다가 내가 "이거 돈 내야 하는 거지? 나 돈 없는데.." 하니까 갑자기 못 알아듣는 척할 때도 짜증 내지 않고, 그에게 오히려 내가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빵 터졌던 거리의 악사는 안 비밀...)
나의 안토니 할아버지 나라니까!
혼자 여행할 때, 내가 꼭 지키는 철칙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경이 되면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숙소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담대한 편이긴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 중 밤에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서도 저녁 시간은 그날 하루 사용했던 비용과 일정을 정리하고, 다음 계획을 하거나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이런 나에게 마지막까지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한 최초의 나라는 쿠바였다.
대부분의 쿠바 여행 글들을 보면 2~3인이 모여 클럽을 가거나, 혼자서라도 클럽을 다녀왔다는 글들이 많았다. 클럽은 대부분 밤 10시에 시작하여 새벽에 끝나기 때문에 고민은 계속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꼼빠이세군도의 팬이었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곡들은 내 페이보릿 최상위 중 하나였다. 이태원 근처 출신이며 어릴 때부터 이태원, 홍대의 재즈 라이브 연주를 찾아 듣고 무척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쿠바까지 와서 클럽을 가지 못한다는 것은 괴로움이었다. 쿠바는 안전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만 그래도 밤 10시에 클럽에 혼자 갔다가 혼자 오는 것은 무서워서 결국 가지 못했다.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넥스트가 있다면, 그땐 꼭 가보리라.
T3 버스를 타고 아바나 근처의 해변, 모로성, 산 카를로스 요새 등을 다니다가 만난 아름다운 카리브해.
쿠바 바로 전, 멕시코의 플라야 델카르멘에서 며칠 보내고 왔지만 솔직히 플라야 델카르멘보다 아바나 근처의 아무렇게나 카리브해 해변이 나에게는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을씨년스러운 아바나 근처 이름 모를 해변들은 하얗고 깨끗한 모래와 파랗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물결이 일렁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곳의 사진이 거의 없다.
여담이지만, 2016년 오래 사용해온 아이폰4s에 찍었던 많은 쿠바 사진들은 열악한 남미의 와이파이 환경에 제때 아이클라우드 업데이트를 안 했다가 칠레에서 폰을 소매치기당하는 바람에 중요한 사진 대부분을 날려버렸다. 결국 남은 건...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다고 들고 온 구린 화질의 디카 사진들. 이후 나는 여행 때는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아이클라우드 업데이트를 한다. 기계는 새로 사면 되지만, 사진은 다시 찍을 수 없으니까...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바나나 한 덩어리를 사서 저녁 대신 먹으며 안토니 할아버지의 나라인 아바나 구시가지를 걸어서 돌아다녔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과 뇌에 아바나를 새겨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바나 구시가지에는 개똥이 정말 많다. 발아래를 잘 보고 다녀야 한다. 가난하고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방들은 깨끗하고, 예쁘고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건물 안의 집에는 예쁜 레이스가 달린 커튼과 가난하지만 깨끗한 물건들이 적당히 놓여 있다. 심지어 멋진 어항이 놓인 집도 봤다. 개와 고양이들에게 다정하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아바나 시민들 때문인지(? 그건 나도 정확하진 않지만) 거리를 떠도는 개와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하지만, 까사에 들어오면서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목이 자꾸 마르고,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짐을 챙기면서 열까지 나는 것을 느끼고 챙겨 온 비상약을 먹고 밤늦게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지만 새벽 2시쯤 바깥에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달리는 소리에 깬 후로 열과 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갔다. 결국 항생제를 먹으며 조금 심한 몸살감기일 것이라며, 약을 먹으면 괜찮겠지 했지만 다음 날 오전 까사 아저씨가 불러준 택시를 타려고 20kg 배낭을 들 때 몸이 휘청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오전에 비행기를 타면 오후 1시 정도면 다음 목적지인 콜롬비아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마시던 물까지 다 버리고,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힘에 부치는 큰 배낭과 작은 배낭까지 몽땅 baggage로 부쳐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왜 공항들은 쓸데없이 냉방을 열심히 하는가... 엄청 더운 쿠바 날씨에 생각도 못했는데 쿠바 공항이 너무 추웠다. 몸이 너무 안 좋아 의자에 누워 아프고 있는데 에어컨을 열심히 틀어 시원하다 못해 추운 공항에서 오들 오들 떨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나는 가지고 있던 쿡을 모아봤다. 돈을 모아보니 출국세 낼 거라고 혹시 몰라 남겨둔 것까지 40쿡 정도 있었다. 나는 긴팔 옷을 사기로 결심하고 공항 내 점포를 돌아다녔다. 너무 비쌌다. 거의 대부분 100쿡 정도...40쿡도 엄청 큰돈이라 생각했는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겨우 겨우 40쿡에 맞는 옷을 찾아냈는데 시원한 마(!!)로 된 남성용 셔츠였다.-이 셔츠는 아직 내 옷장에 있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아쉬운대로 그 셔츠라도 입으니 좀 낫다.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의자에 누워 물도 없어 약을 그냥 삼키면서 아프고 있었다. 그때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우, 뭐야 연착이잖아!!"
화들짝 놀라 가보니 내가 탈 쿠바나항공의 비행기가 오후 3:30에 온다고 한다. 그 말로만 듣던 연착이다. 오후 3:30까지 나는 밥도 물도 없을 것이고 춥고 아프다. 기력이 없어서 오들오들 떨면서 다시 의자에 누워 열심히 아팠다. 하지만 비행기는 4시가 되고 5시가 되어도 올 생각이 없다. 오후 5시까지 비행기 출발 표시가 안 뜨는 걸 보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바나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되었고 공원에서 돈을 주고 구매한 와이파이는 너무 느려 터지고 연결이 잘 안 되어서 결국 보고타의 숙소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밤에 도착하면 나는 어떻게 숙소를 찾을 것인가? 기절할 것 같은 상태가 되었고, 아까부터 공항을 돌아다니던 두 명의 한국인을 찾아가서 바짝 마른입으로 말했다.
"저 좀 살려주세요."
나는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