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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Feb 11. 2024

캘리그래피, 그게 뭐라꼬 - I

진한 감동을 주네,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즐거운..


작년 이맘쯤 ‘감성수채 캘리그래피’ 수강신청을 하였으니 약 1년이 지났다. 새로운 취미를 가진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지 않았던 도구를 가지고 새로운 뭔가를 익힌다는 것이 당연히 어렵다. 이 강좌도 중간에 들어왔다가 포기하고 나간 사람이 거의 절반이상 넘을 것 같다. 큰마음먹고 왔지만 본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포기하고 만다. 어느 중년 여성의 말이 떠오른다.

     

“난 왜 이렇게 안 되나요?”라고 한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몇 주후부터 그 여성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냥 익숙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간의 뇌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낯선 상황’에 마주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뇌는 지금까지 하던 습관대로 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우리의 뇌는 새롭고 낯선 상황에서는 ‘도망갈 것인지’ 아니면 ‘도전할 것인지’를 계속 판단한다. 일단 판단이 끝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데 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취미를 가지거나 변화를 시도하려다 실패하고 옛날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난 타고나게 그림에 소질이 없어’라는 합리화를 하고는 포기하고 만다. 그래야 나의 포기는 내 잘못이 아니고 조상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감성수채 캘리그래피’ 강좌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방법이 '재미있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맞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미를 찾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 보통은 캘리그래피의 기본을 터득하기 위해 초기에 선긋기와 글자 연습을 많이 한다. 근데 이 강좌는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바로 작지만 작품(?)할 소재를 주었다. 그 계절에 맞는 글과 함께 과제를 주기 때문에 스케치북에 그리는 것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간혹 엽서지에 그려서 주위 가족이나 친구에게 메일로 선물하기도 한다. 이곳 <브런치>에 배경 화면이나 삽화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장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으니 즐거움이 더해간다.     


낯선 것에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이제 캘리그래피는 삶에 활력을 주는 취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끔 ‘이참에 작가로 활동할까’ 과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익숙한 같은 공부를 하는 동료가 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편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의 고단함과 기쁨을 함께 공감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일이다.    

   

오전에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는 날이다.

청소년수련관 2층 교실로 들어서니 벌써 여러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번 주에 구정 명절이 있어 서로 차례음식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로 멀리 이동하는지 벌써 걱정과 한숨이 섞인 대화가 오고 간다. 나는 신정을 간단하게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별다른 계획도 없고 일거리도 없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본다.  뒤에 앉은 여성 수강생 한 분은 설차례에 자기가 맡은 음식만 준비하면 된다고 한다.


“뭘 준비하죠?”

호기심이 생겨 내가 물었다.     


“잡채 하고 전을 준비해야 해요”

“약 20인분 정도예요”     


“아니 차례상에 잡채하고 전을 준비하면 거의 다 하는 것 아닌가요?”

“혹시 맏며느리세요?”

오지랖 넓게 또 물어봤다.

    

“둘째 며느리인데, 맏동서는 나물반찬에 식혜, 갈비찜, 탕국 등 준비할게 더 많아요”

“오늘 집에 가면 큰 플라스틱통(다라이?)에 잡채를 만들어야 해요”

“후유~~"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나에게 약간은 부러움과 함께 시샘이 묻은 질문을 한다.


“교수님은 하실 게 없으시잖아요? 좋으시겠다~”

‘당신은 좋겠다, 남자로 한국에 태어나서..’라고 들린다.     


맞다. 아직도 한국 중년여성들은 ‘명절 독박’을 쓰고 있구나. 안타까웠다. 우리 집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슷했다. 아내는 거의 30년간을 명절과 기제사가 되면 하루 전부터 큰집에 가서 음식 준비를 했다. 남자들은 당일에 모여 잠깐 얘기하다가 제사를 지내고 밥 먹고 나면 끝이다.  한국의 여성들이 그 뒤치다꺼리를 다 해야 했다. 밥상도 따로 앉는다. 나 역시 마음은 불편하였지만 그것이 한국의 문화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명절 차례와 제사를 모두 각자 집에서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그때는 만날 수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을 각 집에서 하다 보니 이제는 그것이 기본이 되었다. 그렇게 하기로 나 스스로 결정했다. 아내는 30년 만에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수업은 구정이 이번 주이기에 봉투에 쓸 ‘명절 감사인사’ 글을 선생님이 준비했다. 세뱃돈을 줄 봉투 겉면에 본인이 직접 그린 글씨와 그림을 담아 주면 받는 사람도 기쁘게 받을 것이다. 아니 주는 사람이 더 기쁘겠다.      


캘리그래피 수업에 약 20명이 출석하는데 남자는 약 10년 전에 은퇴했다는 노신사와 함께 나 포함하여 딱 2명이다. 연령대는 약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 중반의 중년 여성들이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시간을 내기 쉽다고 했다.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 이 수업뿐만 아니라 필라테스나 요가 수업을 함께 듣는다고 했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도 있다. 모두 열심히 한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총무를 비롯하여 열심인 수강생 몇 명은 집에서 그려 온 캘리 그림을 책상 위에 진열하여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아주 짧은 품평회를 연다. 다들 탄성과 감탄사 만발이다. 내가 봐도 잘 그렸다.     




선생님의 캘리그래피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그릴 수 있어요?‘

“나도 할 수 있을까요?” 이번 달에 처음 들어온 신입생이 부러운 마음에 묻는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림을 준비한 총무가 겸연쩍어하면서도 자신 있게 대답한다. 나 역시 작년 이맘쯤 등록하면서 수업시간에 같은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잘 그린다. 지난번에는 ‘생일축하를 위해 엽서에 그리기’ 수업이었다. 약 20장 정도의 엽서를 만들어왔다. 아들 딸, 부모님, 시부모님, 형제들,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총무님의 캘리그래피 - 너무 잘했어요!


아직 서툴러 보이는 나의 캘리그래피, 2024년 2월 8일
나의 캘리그래피 - 2024년 2월 8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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