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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Feb 14. 2024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은 '안단테' 리듬으로

인생 2막을 여는 길목에서

첫사랑은 안타깝게도 그 결실을 맺기가 어렵다.

    

설레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속으로만 애를 태웠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난생처음이라 서툴고 낯설어 감정표현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인의 마음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서로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우연의 겹침 속에서 오해를 거듭한다. 결국 우연한 인연이 헤어질 필연이라고 헤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 후회만 남는다. 그래서 첫사랑의 기억은 가슴이 시리고 아리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화 <어바웃타임>에서는 가능하다. 주인공 팀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 삶을 다시 리플레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과연 그는 한 번 살았던 삶보다 두 번째 삶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팀은 아주 소심하여 모태솔로다. 당연히 첫사랑에 실패였다. 그 후,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만난 메리를 보고 첫눈에 반했지만 안타깝게도 우연하게 놓치고 만다. 다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면서 다시 그 연인을 찾아 그녀를 알아간다. 어설펐던 첫 고백은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는 두 번째 고백으로 성공한다. 실패했던 사랑의 인연이 결혼으로 골인한다. 결혼 후, 처음이라 서툴렀던 사랑의 행위도 한번 더 리와인드하여 뜨거운 밤으로 리플레이를 한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 당면한 문제는 해결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는 있어도 내 주변의 상황이나 인물들 또한 과거와 똑같이 흘러갈 수 없다. 나를 제외한 주변의 사람은 그 달라진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      


시간을 아무리 되돌려 보아도 그 시간은 현재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시간에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과거로 돌아가서 두 번째 삶을 살더라도 다시 의미 없는 삶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영화의 대사를 다시 떠올린다.     


“인생은 우리 모두가 매일 함께 하는 시간여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의 멋진 여행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이 처음 맞이하는 시간이자 최초의 경험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항상 만나는 사람들, 경쟁이 치열한 세상일, 지루한 일상의 나날들만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 ‘오늘이 내 마지막인 것처럼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린다. 첫날이라는 단어는 항상 설렘과 기쁨이 묻어난다. 마치 첫사랑의 추억처럼 말이다. 어느새, 나 역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 인생 2막을 시작할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도 온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실감한다.

   

사회적으로 바쁘게 일하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은퇴한 후 넘쳐나는 시간 속에서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후회를 많이 한다.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재미있게 즐길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살아왔다. 특히 한국에 사는 우리는 대체로 이렇게 살지 않았는가? 가정과 직장에서 '일상의 삶'을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지 못했다. 특히 혼자서도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나 역시 몇 해 전까지 항상 목표를 정해 분주하고 바쁘게만 달려왔다. 혼자 고요한 가운데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이제 인생 2막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아니 벌써 2막은 올라갔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취미를 통해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노력한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은 비루해지고 행복은 사라진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따분함'이라고 했다. 나의 시간과 활동을 주도적으로 통제하고 즐길 수 없을 때 무기력이 찾아오고 삶이 따분해진다. 무기력이 학습되듯이 '행복'도 학습이 필요하다.  행복과 비슷한 말은 '재미'다. 일상의 삶에서 자주 재미를 느껴야 행복할 수 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껴야 한다. 최근에 캘리그래피의 재미를 느껴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린다. 언젠가는 'Gardening'도 즐기고 싶다.  


학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즐거움을 위해 하는 취미를 보면 모두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취미 생활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골프, 수영, 낚시, 테니스, 그림, 피아노 등 어느 하나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도 망설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시간만 속절없이 지나갔다. 모두 어리고 젊은 시절에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내가 제일 즐거운 순간은 글 쓰고 책 읽는 시간과 캘리그래피 그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그냥 좋다.     


이제는 ‘천천히’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제는 도파민보다는 은은한 즐거움을 주는 세로토닌을 활성화해야겠다. 예전에는 산에 올라갈 때 숨을 헐떡이면서 뛰듯이 정상에 오르면 날아갈 듯이 기쁘다. 그때는 ‘크레셴도’ 리듬으로 점점 더 빨리 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야 시간이다. 어떻게 하산할 것인가? 빠른 리듬으로 올라가느라 보지 못했던 제비꽃이 있다. 그 작고 수줍게 핀 보랏빛 꽃을 자세히 보고 싶다. 노란색의 애기똥풀도 가까이서 본다. 아주 천천히 호흡을 길게 하면서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도 음미하고 싶다. 천천히 ‘안단테’ 리듬으로 내려가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다지오’ 리듬으로 침착하고 느리게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단테 리듬으로 살아갈 시간이다.


밥을 먹을 때도 천천히 음식 맛을 즐기면서 ‘안단테’ 리듬으로 먹으련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때도 급하게 미리 판단하지 않고 싶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쉽고 빠르게 판단하여 일을 그르쳤는지? ‘결국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를 주장하면서 마치 유능한 능력자인 것처럼, 사실은 외눈박이인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섣부르게 편견에 사로잡혀 성급한 판단과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잠시 판단을 멈추는 시간도 가지고 싶다.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판단을 멈추는 시간을 ‘에포케의 시간’이라고 했다. 섣불리 판단하여 상황을 그르치지 말라는 지혜였다.     


커피도

쏟아져 내려오는 에스프레소는 싫다.


.

.

.

천천히 떨어지는 드립커피를 마시고 싶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얗게 내린 첫눈 위를 뽀드득 걷고 싶다.   

   

.


안단테 리듬으로

생의 2막 커튼을 올린다.     


<어바웃타임> 주인공 팀같이 시간여행은 못하지만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Kira Laktionov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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