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견 재롱이를 떠나보내면서
평소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나와서 차를 타고 태재고개를 넘어 얼마를 더 운전해 달렸다. 차 안에서 아내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난 운전만 하고 옆 자리에 있는 아내는 재롱이를 아직 안고 있었다. 이제 곧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내비게이션에는 다시 계속 언덕을 올라가라는 경로가 뜬다. 아닌데 이 근처인데, 하면서 혹시 오다가 놓쳤나 싶어 다시 돌아가니 거리가 더 멀어졌다.
흠.., 이 근처가 맞는데 내비게이션은 왜 이럴까? 하면서 목적한 장소로 전화했다. 친절한 목소리가 차 안의 스피커폰으로 들렸다. 내 위치를 설명하니 거의 다 왔으니 바로 조금만 올라오면 본인이 길가네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친절하게 응답한다. 조금 올라가니 중앙선 넘어 왼쪽에 한 남자가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맞다! 내비게이션은 중앙선 침범을 못하니 한참을 올라가서 유턴을 하라는 안내 방송에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어쨌건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 분위기가 자뭇 엄숙하다. 건물 색상부터 검은색이고, 기다리고 있는 몇 직원분의 옷도 모두 검은색이다. 그렇지, 이곳은 반려견을 위한 장례식장에 온 것이다. 장례식장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 벌써 재롱이 사진이 스크린을 통해 나왔다. 재롱이와 함께 지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핸드폰에 있는 몇 개의 사진을 미리 장례회사 앱을 통해 보낸 것이다. 이사진에는 이때만 하더라도 백내장이 심하지 않아서 눈이 귀엽고 씩씩한 모습이다.
사진을 보면서 재롱이와 보낸 지난 2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사실 재롱이를 처음 입양하게 된 동기는 딸 둘이 사춘기를 보내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길래 반려동물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면 서로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나의 계획은 대 성공이었다. 재롱이를 서로 아끼느라 정작 딸들이 다툴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재롱이는 나에게도 큰 사랑을 주었다. 아이들이 3~6살 때, 내가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현관으로 달려 나와 나를 기쁘게 맞이해 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내가 집에 들어와도 현관으로 나와 맞이하지 않는다. 방에서 그냥 인사하거나 학원에 가서 집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아이들은 이미 6살 이전에 부모에게 사랑을 주면서 평생 효도를 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재롱이는 20년 간 변함없이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했던 나를 반겨주는 행동을 잊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와서 반겼다. 물론 마지막 약 1년 간, 백내장이 심해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나에게 달려 오진 못했지만 꼬리를 흔들면서 반겨주고 나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주었다.
재롱이가 집에 들어오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든 식구의 관심은 재롱이에게 집중된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가 했는데, 어느 날 사고가 생겼다. 재롱이가 워낙 활발하여 뛰어놀다가 소파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다리가 골절이 되었다. 푸들은 원래 다리가 길기 때문에 다리 골절이 잘 일어나는 견종이다. 밤중에 여러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수술은 잘 끝나고 깁스 한 다리를 이끌고 집에 와서 쉬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 소파에서 아내가 재롱이를 가슴에 안고 자고 있었다.
밤새 아픈 재롱이를 안고 소파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재롱이는 한참 배변 습관을 배우던 와중에 미처 채 습득하기 전에 아프다는 이유로 아무 곳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변을 패드에 일정하게 누는데 소변은 아무 곳에 갈겨 댄다. 몸이 다 나아질 무렵, 다시 배변 훈련을 시켜도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아무리 타이르고 윽박지르고 훈련을 시켜도 그것도 때가 있는지 재롱이가 고집이 센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훈련할수록 더 엇나가는 행동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고 케이지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하면 마냥 슬픈 눈으로 나를 원망하곤 했다. 지금도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재롱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나의 반려견이었다. 공원에 데려가면 그렇게 좋아했다. 나보다 앞서면서 먼저 달려가기에 내가 줄에 끌려서 따라가야 할 정도이다. 공원은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탐색할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공원 근처 사찰로 올라가면 재롱이가 걷기 좋은 공간이 있다. 한참을 걷다가 지쳐서 쉬곤 했다. 하지만 재롱이가 힘들어했던 것은 백내장으로 인한 시각장애였다. 사진으로 확인하니 2019년도, 그러니까 약 6년 전부터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미 수술하기에는 늦은 때였다. 그나마 재롱이와 산책을 많이 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었다.
매일 동네 산책을 나가면 이웃들이 재롱이를 알아보고
“할배 또 나왔네”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
얼마 전, 평소에 다니는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와 상담을 했다. 재롱이가 갈수록 음식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담요 위에서 잠만 자고 아주 가끔 물을 그나마 조금 입에 축이고는 다시 기운이 소진되어 누웠다. 스스로 식음을 전폐하고 밤에 한 번씩 욕창 때문인지 신음소리에 아내가 자다가 깨곤 했다. 더 이상의 삶을 지속할 의미가 없어 보였다. 수의사와 상담 끝에 안락사를 하기로 했다. 아니, 안락사가 아니다. 재롱이가 생의 의미를 다하고 존엄하게 떠나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존엄사였다.
한국동물병원협회에 따르면 강아지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추정하는 방법이 있다. 소형견, 대형견 구분 없이 만 2세가 되면 성숙하기 때문에 사람의 나이로 치면 24세가 된다. 2세 이후부터는 소형견과 대형견의 계산 방법이 달라진다. 이때부터 소형견의 1년은 사람의 5년, 중형견은 사람의 6년, 대형견의 1년은 사람의 7년으로 계산한다.
재롱이를 사람의 나이로 계산하면 24 + 90 = 114세가 된다. 너무 심한가? 그럼 2세 때 나이를 10살이라고 가정해도 20년이 되면 100세가 된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에 나온 반려견의 나이를 사람으로 환산한 표에도 반려견 14년이 사람으로 치면 84세로 더 이상은 없다. 재롱이는 백세 이상을 살다 간 것이다. 장례식장의 직원도 재롱이가 20살이라고 하니 놀란다. 그래서인지 재롱이 죽음이 슬프지만 죄책감이 있거나 애통하지는 않았다. 아마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고 갔기 때문이지 않을까? 마지막 한 달 정도 계속 누워만 있었기에 다리에 욕창이 생겨 힘들었지만 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재롱이와 함께 매일 산책하면서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나를 앞서서 재롱이가 얼마나 힘차게 걷는지 따라다니기가 바쁠 정도였으니 에너지가 넘쳤다. 재롱이가 산책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뻤다.
재롱이를 떠나보낸 것은 슬프지만, 20년을 우리 가족과 건강하게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다 간 재롱이다. 지금은 상실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살아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기억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살아있을 때 정성을 다해 사랑해 주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족하지 아닐까 생각한다. 재롱이와 충분히 오랜 시간, 원 없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면서 보냈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가족들과 살아 있을 때 서로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 누구를 이렇게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재롱이를 보내면서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