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날 낳고 키워준 부모님? 절절한 사랑을 나눈 연인? 전 부모님껜 배은망덕해 보이나엄마로서 망설임 없이 아이라고 할 거예요.부모님도 남편도 너무 소중하지만 남편 위해 죽으라고 하면 10초 정도는 생각해 볼 것 같거든요. 그런데 아이라고 하면 0.1초면 답이 나올 겁니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봐요. 아이도 나와 다른 타인인데 10개월간 한 몸살 이를 해서인지 태어나자마자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저는 F를 가장한 T여서 그런가 아이가 소중한 건 맞아도 나를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했고 저에겐 제가 부동의 0순위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출산하고 나니 왜 자식을 대신해 죽을 수도 있단 말이 나오는지 알겠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내 밑바닥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는 일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아이를 키우며 아이러니하게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제 밑바닥을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보고 있어요. 생떼 부리고 울면 다 그만두고 싶고 아이에게 해코지하고 싶고 아이가 없었던 자유가 그리워져요. 우는 아이 때려봤자 그칠 것도 아닌데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지 못해 전전긍긍하죠.
직장에서 사이코패스같은 상사한테도 배실배실 웃으며 비위를 맞췄는데, 그 극한에서도 참았는데 왜 사랑스러운 아기를 향해 여과 없이 화를 내는지 말이에요.
호르몬은 말썽을 피우고, 수면패턴은 박살이 나고 출산 후 반송장 같은몸을 회복하기도 전에 온종일 우는 아이와 사투를 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지만요. 달래 지지 않는 아이와 더 달래 지지 않는 나를 보며 T도 여러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속에 저는 굉장히 헌신적이고 따뜻하고 자상한 엄마인데 현실에서는 분노조절장애 도깨비 같은 엄마이다 보니 그런 제 모습을 보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몇 명씩 잘만 기르는데 왜 나만 유난이고 이렇게 힘들까. 나에게 근본적으로 화를 못 참는 DNA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내 밑바닥을 실시간으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마주하는 건 저를 아주 쉽게 무너지게 하더라고요.그럴수록 아이가 버거워져만 갔습니다.
아이에게 화내는 엄마들을 보며 '저럴 거면 애는 왜 낳대', '자기감정도 감당 못하나', '아무리 화가 나도 참고해야지' 이딴 머저리 같은 생각을 했던 과거의 저를 반성합니다. 사람은 이래서 경험하지 못한것은 함부로 짐작해선 안되나봅니다.
오늘도
아이에게
하지만 밑바닥인 제 인성을 두고 욕만 할 수는 없죠. 제가 석가모니입니까 뭡니까. 지금 정신수양 중인 것도 아니고 성인군자로서 제자를 받은 것도 아니에요. 그저 한 사람이고 사람은 힘든 상황에 놓이며 격하게 흔들리는 법입니다. 흔들리면서도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고요. 힘든 상황이 닥치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 잘못을 계속 줄여가는 노력을 할 뿐이에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독립할 때까지 저도 수없이 실수와 잘못을 하겠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다그치기보다는 다독이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 겁니다.
오늘도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엄마가 아직 부족해서 미안해. 네가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듯 엄마도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오늘은 조금 더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 볼게. 사랑해.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