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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프러스 Jan 08. 2024

6. 먹고 싸고 자고의 위대함

어느 아이의 탄생

보잘것

없어

보이는

하루


구든 출산 전에는 자유로운 시절을 만끽했을 겁니다. 요즘은 결혼 전에 사회생활을 안 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거나 동생들을 돌보거나 하는 경우극히 드물잖아요. 대부분 화려한 싱글을 보냈거나 커리어우먼으로 능력을 뽐냈을 겁니다. 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그 생활은 막을 내리죠.


출산 후 아기를 돌보면서 먹이고 재우는 일에 온통 신경을 쓰다 보면 내가 보잘것없어진 것 같고 내가 설 자리를 잃은 것 같아 우울해질 수 있어요. 나란 존재는 삭제되고 오로지 아기만을 위한 나날이 계속 되니까요.


그런데 절대 보잘것없는 일이 아니죠. 아기를 키우는 모든 분들이 한 생명을 지키고 성장케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기가 먹고 싸고 자는 일은 자칫 별일 아니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위대하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먹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먹을 것이란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몰랐죠. 아기 먹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애 낳으면 그냥 모유 먹이 된다고 생각한 지난날의 저를 반성합니다.


 낳는 거보다 더 아픈 젖몸살이라는 어마무시한 고통이 찾아오는 거 왜 아무도 말 안 해줬나요. 사람마다 모유가 넘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반해 가뭄인 사람도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아이에 따라 젖을 잘 무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못 한 아이도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요. 먹일 때마다 아프고 피도 나고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올지도 출산 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이에요.


분유는 또 종류가 왜 이렇게 많고 젖병이니 젖꼭지니 대체 종류가 왜 이렇게 많나요. 제발 신제품, 신기술,  특허 좀 그만 냈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뇌까지 같이 출산해서 단어도 잘 안 떠오르는데 공부하고 비교할 게 너무 많잖아요.


싸고


아기가 얼마나 적절하게 잘 싸는지 건강의 척도이기 때문에 신경   수 없죠. 기저귀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도 하루에 이렇게 많이 갈아줘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응가 색깔에 일희일비할 거라는 생각도요. 제 배변활동은 아기 때문에 원활치 못하지만 아기 배변활동엔 문제가 없어야 하잖아요.

기저귀 가는 짧은 사이에 2차 응가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고 기저귀가 새서 이불을 몽땅 빨아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생각보다 아주 자주요. 그리고 아기들은 대체로 기저귀를 갈 때 짜증내거나 운답니다.


자고


이건 아기의 건강문제도 있지만 엄마의 생존과도 관련이 깊어요. 아기들은 잠들기 너무 어려워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안아서 둥가둥가 해줘야 하고 그마저도 잘 시간을 넘기면 오히려 각성상태가 돼서 온갖 짜증을 부려요. 그럴 땐 아무리 안고 달래도 달래 지지 않죠. 겨우겨우 재워도 이렇게 품에 안고 있어야 깨지 않는답니다. 소위 등센서가 작동해서 잘 자다가도 눕히는 순간 깨버리죠. 저 같아도 딱딱한 침대 말고 따뜻하고 심장소리 들리는 엄마품에서 자고 싶을 거 같아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될수록 새벽에 수시로 깨서 밥을 먹이고 다시 재워야 해요. 이때 가장 인간의 한계를 느끼죠. 낮에도 내내 안고 재우거나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잠시고 쉬지 못했는데 밤에도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밥 주고 소화시켜 주고 재워줘야 해요. 이때 울고 안 자면 이성의 끈이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게 없어지죠.


위대한 

일들


병원에서 그러더라고요. 아기는 태어나면서 엄마 몸의 모든 영양소를 빨아먹고 나온다고. 그래서 엄마는 텅텅 비어있다고 합니다. 출산 후 충분한 휴식과 영양보충으로 이전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대요. 하지만 엄마들은 그럴 수가 없죠. 아기가 잘 먹고, 싸고 잘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엄마의 희생 아래 아기가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요. 엄마가 돼서야 이런 기본적인 일들이 위대한 일인지 알았답니다. 그러니 과거의 화려하고 자유로웠던 나의 모습과 정반대인 지금 모습에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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