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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프러스 Jan 29. 2024

7. 안 싸우는 부부는 있어도 안 싸우는 부모는 없다

어느 아이의 탄생

대립의

발원지


부부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아이를 키우면 싸움이 잦아진다는 말 들어보셨죠? 육아라는 험준한 산을 넘으면서 고된 일과를 보내니 작은 일에도 날이 서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게다가 소중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요. 아이가 우는데 부모가 힘드니까 '내일 달래주자' 할 수는 없는 것처럼요. 서로가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힘든 걸 도와주면 된다는 교과서에도 안 나올법한 얘기는 접어두고요. 왜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가 남북대립보다 더 첨예한 대립관계되는지 저의 일과를 통해 보려 합니다. 


부부 중 한 명은 양육 전담, 한 명은 출근 한다는 전제하에 엄마로서 주양육자가 된 저의 일과와 바쁜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으로서 저의 일과를 비교해 볼게요.


주양육자 입장을 먼저 들어보죠. 하루종일 아이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씻기느라 진이 빠집니다. 이제 기억도 안나는 20대 초반의 건강한 몸이 아닌데 힘껏 우는 아기를 안아 달래는 건 난이도 극강의 미션입니다. 아기가 잘 때 자야 덜 피곤하다는 말은 사치에요. 그 시간은 집안일해야 합니다. 세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다 있는데 뭐가 힘드냐고요? 세탁기가 알아서 빨래를 빨아들여 빨고 건조기로 옮겨준 뒤 건조기가 개서 옷장에 넣어주면 편합니다. 청소기가 바닥에 이불, 장난감, 잡동사니 다 치우고 먼지먹어주면 편하죠. 아이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에 간다 해도 아이와 씨름을 하며 하루를 보낸 주양육자퇴근해서 돌아올 아내, 남편 기다립니다. 그런데 퇴근 후에 성에 차게 도와주지는 않죠.  


직장인으로서 입장을 들어볼까요. 다들 출근해 봐서 알겠지만 출근이 막 신나고 기다려지고 하진 않잖아요. 일은 늘 쌓여있고 인간관계도 어려워요. 출퇴근이 시간이 길면 피로는 배가 되죠. 거기에 한 가정을 책임진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누르죠. 하루에도 몇  사표를 날리고 떠나고 싶어도 당장 돈벌이를 생각하면 모두 참아내야 합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녹초가 돼요. 퇴근을 산뜻하게 하는 날은 1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겁니다.  소중한 아기가 그저 귀찮아서가 아니라 퇴근 후엔 에너지 방전상태라 그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남은 힘을 짜내서 최대한 도와주지만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습니다.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말라는 소리가 날아오죠. 스트레스를 풀거나 긴장을 완화시킬 곳 없이 또 하루가 갑니다.


제가 겪어본 바에 의한 비교이니 사람마다 가정마다 차이는 있을 겁니다. 아기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둘 다 육아하는 경우처럼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하 분명한 건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아주 힘들다는 거예요. 이게 대립의 원인이죠.


서로에게

벽이 되는

순간


육아도 회사생활도 육체적으로 고된 것의 연속이고 이 육체적 피로는 정신을 갉아먹게 되어 작은 갈등조차 풀지 못하 되죠. 힘들다고 다 치고받고 싸우냐고 하면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면 '나의 힘듦'을 서로가 먼저 알아주길 원하죠. 그 욕구가 충족이 안되면 원망과 서운함이 생기고 싸움으로 번집니다. 싸워도 그때마다 풀고 서로 맞춰가면 참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입니까. 인간은 태초부터 싸웠어요. 안 싸울 수 없는 DNA인 거죠.


특히 부부싸 하면서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바로 서로에게서 '벽'이 느껴질 때인데요. 자기의 고정관념과 고집을 관철하거나 내가 힘든 것만 내세우면 상대는 벽을 느끼게 돼요. 그럼 상대는 분노에 이어 무감을 느낍니다. '저 사람은 날 이해해보려 하지 않고 더 이상 대화가 안 돼',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아', '자기만 힘든가' '원래 저런 인간이었나' 이러면 점점 대화가 사라지고 결국에 제발 내 맘을 알아달라고 악을 쓰면서 싸울 수밖에요. 


화산을

잠재우는

기술


나만의 확고한 가치관이요, 대쪽같이 곧고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조금은 융통성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상대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것의 시작이거든요. '난 이렇게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내 기준에 이건 일도 아니지만 상대방에겐 어려울 수 있구나', '내 아이는 이런 걸 어려워하는구나'이렇게요. '쟤는 왜 저것도 못해, 애는 자기만 키우나, 남들은 다 잘하는데 너는 왜' 이거 금지어예요. 누가 나한테 이런 말하면 그날은 억울하고 분해서 잠도 안 오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내 기준과 생각에 못 미쳐도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 안 해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면 상대방의 날 선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을 거예요. 상대가 날 이해해 주는구나 생각이 들면 그 어려움도 녹아내릴 겁니다. 화산이 곧 터질 듯 마그마가 끓어올랐다가도 상대가 먼저 사과하거나 차분히 대화할 것을 권한다면 대폭발은 없을 거예요. 양쪽 활화산이 다 같이 터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갑니다. 아이는 대피도 못해요. 그러니 일부로라도 따뜻하게 말을 건네보세요. 불길이 치솟던 화산도 가라앉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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