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보면 '50일 만에 통잠 잔 아기 비결', '두 돌에 한글 뗀 비법', '스스로 준비물 챙기는 5살' 이런 내용 많이 보이죠? 이놈의 애증의 알고리즘이란.. 이런 게시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전 처음엔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면서 따라도 해보고 잘 안되면 우리 아인 왜 못하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저는 회사에서 "ㅇㅇ는 잘만하던데 □□는 왜 이렇게 답답하게 일하나?" 이런 소리를 듣고 몇 날며칠 분이 안 풀리고 저놈의 꼰대상사 네 까짓게 뭔데 날 판단하냐, 죽을 때까지 저주하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너무 쉽게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백일 된 아기한테 넌 왜 다른 아기들처럼 통잠을 못 자니 하면 말도 못 하는데 아기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할 일이에요. 집이 회사도 아니고 승진할 것도 아닌데 평가하고 비교할 필요 없잖아요.
엄마아빠는
도와주기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운전이 필수인데요. 대체 왜인지 저는 운전이 너무 무섭고 연습해도 잘 늘지 않더라고요. 그런 저에게 선배는 남들 다하는 거 너는 왜 못하냐며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다 큰 성인인데도 그 윽박지르는 소리에 오히려 더 못하겠는거예요. 나중엔 운전 못하는 걸로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 내가 여기서 쓸모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전 꽤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고 사는데 그 선배의 몇 마디에 그렇게 주늑이 들더라고요. 어린아이들은 어떻겠어요. 게다가 별로 제게 가치 없는 선배가 한 말에도 상처입는데 아이의 우주인 부모가 그런 말을 하면 아이 마음은 큰 상처를 입겠죠.
전 부모는 도우미 역할만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 대신 걸어주거나 아이 대신 양치하는 것이아니라스스로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죠.
내향적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려운 아이는 학교에서 발표시간이 공포로 다가오죠. 성인이 되면 먹고살려고 발표도 강의도 해야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저 피하고만 싶잖아요. 이런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거나 못한다고 혼내기만 하면 아이 마음이 어떨까요. 극성부모가 돼서 학교에 전화를 넣어 "우리 아인 그런 성향 아니니까 이젠 시키지 마세요"이런 의미 아니죠? 그런 발표의 순간이 올수밖에 없고 어려워도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알려주고 잘하면 칭찬을 못하면 격려를 해주는 거예요.누구는 남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데 넌 왜 발표도 못하니. 이거 아이에게 쌍욕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저는 비록 운전은 손발이 바뀐 건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지만 보고서도 잘 쓰고 잡기에 강하며 센스 있게 일처리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잖아요.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없어요. 못하지만 꼭 필요한 건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꼭 잘하게 매달릴 필요 없어요. 모두가 말하잖아요. 사람마다 강점이 다르다고. 흔해 빠진 말 같나요? 진리의 말은 모두가 진리임을 알기에 널리 퍼져 있어 흔해 보이기 쉬어요. 하지만 그 진리를 몸소 깨닫는 사람에겐 말의 무게가 달라지겠죠.
왜
내 부모님은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지 않았을까
다른 아이들은 다 잘하는데, 다 빨리 다음단계로 넘어가는데 내 아이만 느리거나 못한다면 조바심 나고 혹시 문제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돼요. 당연해요. 아이가 소중하니까 당연히 드는 마음이에요. 내 아이는 뭐든 잘해서 칭찬받고 인기를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 편하고 안락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부모에게 조바심을 일으키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가 이미 그 길을 걸어왔기에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이걸 잘해야 먹고살기 편하고 이대로 두면 그저 그런 인생을 살 거라는 걸 과거 경험에서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요.
저도 영어는 무조건 어렸을 때부터, 최대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다 동의해요. 제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요.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때려서라도 공부시켜 좋은 대학 안 보냈을까. 좋은 대학으로 시작하고 좋은 직장으로 시작했다면 훨씬 더 누리고 살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제가 그럴 능력과 의지가 안 되었던 거고 만약 나를 때리거나 윽박지르거나 계속 잔소리해 가며 공부공부공부.. 이렇게 괴롭혔다면 전 정말 제 유년시절이 끔찍했을 거예요.
아이가 잘하고 흥미있어한다면 충분히 지원해 줘야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요. 억지로라도 우수한 인재로 만들어 사회에 내보내기보단 좀 더 행복하고 여유로웠던 유년시절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게 훗날 아이가 고난을 맞이했을 때 풍부하고 따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견뎌내고 충족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