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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토 Jul 27. 2020

아무도 말 안 하는 조별과제 현실조언

예술대학교의 현실에 대하여_02


조별과제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힘들다.



조별과제를 즐겁게, 기꺼이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세상의 온갖 끔찍한 상황들이 난무하는 조별과제를 즐기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병을 얻어 입원하시고, 세상의 모든 조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세상의 모든 가정에 우환이 생기는 일들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조별과제는 분명 악마의 산물일 것이다.


조금만 검색해봐도 인터넷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별과제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도 벌어지겠어? 다들 예외적인 일을 겪으니까 인터넷에 남기는 거지.'


그렇다. 살인 사건은 예외적인 일이고 평상시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뉴스에 나는 거다. 뉴스에 맨날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고 해서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조별과제에 대해 고통을 호소하는 많은 글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지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학에 진학한 새내기였던 나는, 개강 후 한두 달 만에 첫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다. 책의 목차 중 자신이 관심 있는 파트를 골라, 같은 파트를 원하는 사람들과 한 조가 되는 방식이었다. 나의 첫 조별과제 조원은 두 명의 언니들이었다. 인생의 첫 조별과제라는 사건 앞에서 내 가슴은 설렘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협동하고 일을 분배하며 '으쌰 으쌰'하는 분위기 속에서  A+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우리, 그냥 발표하지 말자.




첫 조별회의에서 언니 두 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순간 인터넷에서 본 많은 조별과제 경험담들이 머릿속을 잔잔하게 스치고 지나갔으며, 그 이후 하얘졌다. 도저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교수님께 일러야 하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맞서 싸워야 하나?'

'사람을 죽이면 처벌이 어떻게 되더라? 내 인생 여기서 접어도 되는 걸까?'

'아니, 진짜? 진짜로? 발표를? 이유 없이? 그냥? 하지 말자고?'



조별과제는 누구나 힘들다. 그것은 중력과도 같은 이 세상의 법칙이다.


그 힘든 조별과제를 현명히 대처하는 것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저 불행한 첫 조별회의 때,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언니들, 그냥 제가 PPT고 대본이고 다 해올 테니까 발표날 그냥 대본 읽어만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대사다. 그러나 머릿속이 하얘진 상황에서는 나름 최선의 말이었을 거다. 새 시작부터 싸움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과 괜히 불화를 빚고 싶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성격 이상한 애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전부 어리석은 일이었다. 대학생은 다들 성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사진출처 : syumart. 갑자기 스트레스받아서 그만...

 




그래서 조별과제 어떻게 대처하냐



나는 결국 혼자서 다 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그냥 과제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표 당일에 질문들은 나에게만 오는 것도 아니었고, 교수님은 누가 혼자 했는지 누가 안 했는지를 다 알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고, 언니들은 내가 써준 대본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교수님이 '협동'에 대한 점수를 포함하고 있다면 혼자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PPT에서 조원들 이름을 작게 쓰거나 빼버리거나 발표 당일에 혼자 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해서 협조하지 않은 조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최대한 좋게 좋게 마무리를 짓고 싶다면, 본인에게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면, 가장  최소한의 분배를 비협조적인 조원에게 맡기고 '이번에 과제하기가 정 어렵다면, 내가 이만큼 할 테니 다음에 밥 한 끼 사라.'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


정말 이것도 하기 싫고 저것도 하기 싫다는 사람은 따로 교수님께 말씀드리는 게 제일 낫다. 조원을 바꿔 달라고 하든가, 나를 다른 조에 넣어달라고 말하든가,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말은 사실 비추천이다. 교수님들은 조별과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운지도 잘 모르신다. 아마 '너희들이 알아서 잘 협동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이거 우리 아버지가 피 땀 흘려 버신 375만 원인데요, 스트레스 한 사발 주시겠어요?'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일이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만약 저 당사자라면 후에 주변인들에게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하며 돌아다니게 될 것인가, 이 일을 교수님께서 알게 되신다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 것인가, 내가 엿을 먹인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만한 능력이나 의지를 갖게 될 것인가 등의 생각을 꼼꼼히 해 보는 것이 좋다. 대학교에서 인간관계나 소문 따위로 스트레스받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아무리 대학이 배움의 장이라지만 벌써부터 '협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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