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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Oct 08. 2024

포르투에서 만난 친구들 - 2

주앙은 진실된 눈을 갖고 있어


갈 캠핑장에는 조리시설이 없댔다. 그래서 불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걸 챙겨서들 모이기로. 아침 먹고 핑구도스에서 샌드위치랑 빵이랑 과일이랑 과자, 맥주 샀다. 이 모든 걸 챙겨들고 메트로 타고 마틸드가 일하는 댄스학원 앞으로 갔다. 2시 반에 출발하는 거 였는데 주앙이랑 마틸드 만나고 보니 다른 차주인 리안드로가 늦는댄다. 3시까지 온다길래 멀지 않은 데 있는 하와의 셰어하우스로 갔다.


클라라, 주앙, 티아구


거기서 새로 추가된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인서 온 클라라(민기는 이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했다;; 왜지?ㅋ) 파키스탄 출신인데 두바이에서 살다가 포르투와서 일하는 중인 새미, 리안드로 친구인 말괄량이 티아구까지. 셰어하우스에는 24명 정도가 사는데, 대부분 다른 국적이다. 각자 살고 싶은 곳으로 와 일자리를 찾았고, 여기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것. 


왜 이런 삶을 생각해본 적 없을까? 왜 한국에서만 살아야 하고, 한국에서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언어가 안 되면 힘들 거라는 공포(현실이기도 함), 그 나라가 서양권이라면 밍글링되기 한층 더 어려울 거란 지레짐작(또한 사실이기도 함) 때문일듯. 서양 애들끼린 또 어떤 국적을 속으로 내려다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겉보기에 유난히 튀지 않는 서구적 외모라면 언어가 좀 안 되도 쉽게 친해지곤 하니까. 


매트리스 바람 넣는 민기와 새미, 호숫가에 앉은 주앙과 하와


아무튼 다들 모여서 갈 준비 마치고 나니 3시반~. 나랑 민기는 주앙 차, 나머지 4명(두 장정 포함ㅋ)이 리안드로 차탔다. 드디어 출발. 가는 길 차 안에서 여러 이야기 나눴다. 한국 교육은 너무 경쟁적이어서 우울감이 높고 그때문에 청소년 자살률 높다부터 포르투갈은 1등 압박이 없는 대신 발전이 느리다는 이야기. 우리의 갭이어 이야기, 지금껏 가본 나라 이야기 등. 주앙은 영화를 좋아하고, 시골인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어했다. 지리학 전공하고 회사 다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물이 나서 때려치고 지금은 지리학 선생님 되려고 다시 학교에 들어갈 준비 중이었다. 나이는 28. 마틸드는 현대무용 전공. 여기저기 댄스학원에서 강사하면서 가장 노릇 중ㅋㅋ. 마틸드는 우리가 갔다온 아베이루 출신. 아베이루 볼 거 없었는데… 말 조심해야지ㅋ


한시간 반쯤 지나고 도착한 캠핑장! 와 사람 엄청 많았다. 여러번 와 본 주앙도 이렇게 가득 찬 거 처음 본다고 했다. 차 내려서 호수 잠시 감상해주고 다같이 짐 빼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리안드로가 텐트 빌려줌. 나 칠줄 아는데 마틸드가 열심히 도와줬다. 착한 친구. 텐트 바닥에 깔 매트리스도 있어야 되는데 주앙이 자기 꺼 빌려줄텐데 어딘가에 구멍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 다 빠져서 바닥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긴 뭘, 우린 아무 것도 없이 맨몸에 침낭만 가져왔는데. 열심히 바람 넣고 짐 놓고 다들 수영복 갈아입었다. 


텐트 장인 마틸드, tmt 베스트 드라이버 리안드로, 하와와 리안드로


막간 점심 타임. 각자 싸온 거 다 가운데 탁자에 올리고 랩도 싸먹고, 빵도 먹었다. 거의 5시 다 돼서 호숫가로. 그래봤자 텐트 쳐놓은 데서 1분 거리. 포르투갈 내 북동쪽이어서 그런지 포르투보단 해가 일찍 질 느낌이었다. 머드 바닥인 호수에 들어가니 물이 생각보다 미지근. 바람이 좀 세게 불어서 오래 있진 않았다. 나와서 몸 말리니 시작되는 게임타임ㅋㅋㅋ 애들이 게임에 진심ㅠㅠ 동그랗게 둘러 앉아서 우노UNO 했다. 게임하면서도 이 얘기 저 얘기 계속하느라 진행이 겁나 느림ㅋㅋㅋㅋ 한 쪽에선 영화 얘기, 한 쪽에선 포르투갈 역사 얘기, 한 쪽에선 한글과 한자 설명, 한 쪽에선 ‘아프리카 이름’ 갖고 논쟁, 한 쪽에선 신이 있냐 없냐. 아주 가지각색의 논쟁이 큰소리로 오갔다. 중간에 우리한테 싸우는 거 아니라고 설명함ㅋㅋㅋ


"우노!!!!!!!"


7시쯤 되니 해도 지고 엄청 추워서 자리 접었다. 구름 한 점 없어서 별이 뜨면 대박이겠다 싶었다. 씻을 수 없으니 대충 옷 갈아입고 포장마차 같은 데서 핫도그랑 비파나BIFANA 먹음. 다들 다시 텐트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바닥에 둘러 앉아서 또 게임ㅋㅋㅋㅋ게임중독자들. 마피아랑 미스터 화이트. 게임에 관심 없고 애들 놀리는 데 관심 많은 티아구. 마피아로 본인 지목할 때마다 “유 호모포빅 빗취!!” 이 난리ㅋㅋㅋ아 너무 피곤한데 애들이 잘 생각을 안 한다ㅜ 결국 새벽 2시반까지 게임하다가 간신히 파하고 양치할 겸 은하수 보러갔다. 근데 와, 호주에서 본 것만큼은 아니지만 뉴질랜드나 길리랑 비교하면 훨씬 많았다. 진짜 많아서 감동. 추운데도 덜덜 떨면서 열심히 올려다봤다. 남자애들 내려와서 주앙 또 TMT로 며칠 전 포르투에 떨어진 보라색 별똥별 영상 찾아다 보여줌ㅋㅋㅋ 추워죽겠다 얘들아. 나랑 민기는 자러 튀튀. 



저녁 메뉴 비파나 기다리는 민기 그리고 노을


얘들아....자자 제발....


근데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춥다… 20도쯤 되는데…산속이어서 그런가. 우리 침낭이 봄가을용이라서 그런가. 양말 신고 가지고 온 히트텍도 입었는데 너무 추워서 잠이 안 왔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어떤 미친 족속이 낮에 틀어놨던 볼륨 그대로 뚱까뚱까 대는 노래를 새벽 내내, 리터럴리 새벽 내내 트는 것. 원래도 이어플러그 가지고 다니는데 그걸 껴도 그냥 바로 옆에서 트는 것마냥 컸다. 그걸 새벽 5시까지 계속했다. 아무도 가서 볼륨 줄이라거나 제지하지도 않음. 그냥 각자 텐트 안에서 꿍시렁 대면서 억지로 잠 청하는 건지 뭔지. 이 난리통에 어떻게 자냐고?! 난 결국 자는 걸 포기하고 덜덜 떨면서 핸드폰이나 했다. 민기는 자는둥마는둥 하다가 아침에 잠시 잤다. 바로 그 노래 소리가 잠시 꺼졌던 새벽6시부터 7시, 딱 한시간.ㅋㅋㅋㅋ그러고 아침 7시부터 미친듯이 시끄러운 노래 또 시작됨. 거기다 짹짹이들까지 합세. 


오늘 집가서 하루종일 자야지 하면서 그냥 뜬눈으로 밤샜다. 아침 9시쯤 텐트 빼꼼이 열었는데 새미 빼고 아무도 안 일어남. 나 혼자 나가서 새미랑 인사하고 호수 투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코스는 끝이 있어서 금방 끝났다. 돌아오니 클라라랑 민기도 깨어있었다. 넷이서 내려가서 포장마차에서 커피 때리고 멍도 때리다가 올라갔더니 티아구 빼고 다 깨있었다. 아침 또 대충 만들어먹고 12시에 티아구까지 깨웠다. 텐트 열심히 접고…짐싸고… 맥주 한잔씩 하고… 또 출발.


아침 메이트들, 텐트 접는 거 도와주는 장인 마틸드


주앙의 드리프트는 날 멀미하게 해


어디 가냐고? 폭포가 있는 계곡. 포르투로 돌아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코스로. 더 폭포가 크고 예쁜 곳도 있는데 거기는 리안드로가 의족으로 걸어가기 힘들어서 조금 아담한 곳으로 택했다. 근데 가는 길이 완전 구불구불, 주앙 운전은 미친듯한 드리프트. 나는 토하기 일보직전이라 말을 잃은 채 이마감싸고 갔다. 30분쯤 지났을까, 계곡에 도착했다. 나는 멀미 때문에 물에 안 들어갈 생각으로 내려갔다. 근데 애들 다 물에 들어가는 거 보니 들어가고 싶어져서 차에서 급히 갈아입고 입수.


추운 거 못 참는 민기와 웃겨 죽는 마틸드


입수하는 나... 추워 죽는 나와 낄낄 대는 마틸드&주앙... 바위 위 맥반석


계곡에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가족 단위, 중년부부끼리, 젊은 커플끼리, 우리처럼 친구들끼리. 자연에서 사람들 그냥 잘 논다. 뭔 이상한 마룻바닥 깔아놓고 돈 받는 사람도 없고 그냥 돌 위에 알아서 자리 잡고 누워서 자거나 수영한다. 물 너무 차가워서 들어간 거 후회함ㅋㅋㅋㅋ나와서 햇볕에 바짝 말라가면서 수다 타임. 포르투갈은 대마가 불법은 아니라서 하는 애들이 많다고. 티아구 포함 흡연자 애들 대부분 담배 직접 말아피웠는데 타바코에 대마도 섞어서 폈다. 옆에서 간접흡연 하기에는 오묘한 냄새,,, 유럽 골목 곳곳에서 맡았던 그 냄새;;; 마틸드가 가져온 당근에 후무스도 찍어먹고 내가 좋아했던(!) 스페인 오무라이스도 먹고 배도 채웠겠다, 돌에 널브려져 있다가 햇볕이 모두 가실 때쯤 출발. 귀마랑에서 저녁 먹고 가기로 했다. 오예

고기 굽는 아저씨. 저 큰 주전자 가득 그린와인 7.5유로.


주앙이 귀마랑에 대해 또 역사 설명ㅋㅋㅋ초식남 주앙. 포르투갈이 이 도시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원래 스페인 땅이었다가 섭정하던 엄마랑 싸운 아들램이 귀마랑으로 와서 포르투갈 만들었다고. 암튼 그 역사적인 도시에서 저녁을. 뭔 성채 앞에 차를 대고 성채 아래로 내려가는데, 여기에 식당이 있다고? 하는 곳에 식당이 있었다. 다들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고 한 쪽에선 아저씨들이 즉석 바베큐를!!! 고기 냄새 풀풀. 귀마랑 제 그린와인을 파는데 1L짜리 큰 주전자에 와인 가득 따라준다. 거의 표면장력 수준. 그게 7유로;;;;; 미친 가격. 


육고기 안 먹는 새미는 대구 사르디냐 먹고 나머지는 닭고기, 메추리고기, 돼지고기 어어엄청 많이 시켜서 먹었다. 근데 야채랑… 빵이 없어서… 진짜 고기만 먹음. 무진장 짜다. 고기가 무슨 계속 서빙되는데 내가 ????하니까 마틸드가 “포르투갈 진짜 음식문제 있어ㅋㅋㅋ겁나 많이 먹음ㅋㅋㅋㅋ” 했다. 진짜 많이 먹긴 함;; 삼겹살 먹고싶었던 민기도 열심히 흡입. 거기서 또 해 다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keep 수다. 추워서 덜덜 떨릴때쯤에야 이제 집에 가자~

메뉴 설명하는 모습이 꼭 PT하는 것 같은 마틸드와 그걸 찍는 리안드로ㅋ
끝도 없이 먹어... 우린 식습관 문제가 있어...


전날 아예 못자서 너무 피곤한 와중에도 집에 가기 아쉬웠다. 애들이랑도 친해졌고, 주앙 마틸드같은 친구를 한국도 아니고 타지에서 만난 게 신기하고도 럭키했기 때문. 과한 친절도, 무례도 없이 사려깊고 말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디에서든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본 우리를 여행에 선뜻 초대하고, 친구도 소개해주고, 어떤 편견도 없이 베풀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너무 어렵다. 그 이후 여행을 계속하면서도 또 느낀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그 친구들 덕분에 포르투가 그냥 기분 좋았던 도시로 남았다. 무튼 이 고마움을 갚기 위해 우리가 한국 음식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포르투 떠나기까지 4일 남았으니, 출발 전날에라도 잠시 만나자고. 친구들은 그럴 필요 없댔지만 강권ㅋㅋ. 


포르투로 돌아오니 밤 12시. 짐이 섞여있어서 출발 장소에 다시 돌아와 각자 짐 되찾고, 주앙&마틸드 외 다른 친구들과 작별인사ㅠ. 다들 여행 잘 하라고 해줬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착한 이 커플이 또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겠대서 다시 탑승. 내려주고 떠나는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인사했다. 큰 감동 받은 민기. 대체 이틀 무슨 경험을 한 거냐며 잠드는 순간까지 감동을… 은혜 갚는 까치 결심.


주앙과 클라라의 귀마랑 역사 강의. 그리고 귀엽게 매달린 마틸드 뒷모습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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