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테 너 계획 얘기해봐, 아마 웃을 걸.
계획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세상 일이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 너무 목매지 말고 스스로 환기할 줄도 알라는 말이었다.
한창 취업 준비 중이던 2016년.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매몰되면 목표로 가는 길가 옆에 놓인 수많은 즐거움과 기회를 놓친다. 이것만 해내면, 이것만 이루고 나면을 반복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미뤘다. 시험을 통과해서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 그것들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니까.
독일 친구 칼이 한국에 놀러왔을 때 해준 나미비아 여행 이야기를 10년 지난 지금도 잊지 못 한다. 본인이 18살에 친구 한 명과 트럭을 빌려 사막 여행했을 때의 이야기. 밤이 돼 초원 위에 차를 대고 트럭 지붕에서 자다가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 눈을 떴고, 순식간에 퍼붓는 비가 근방에 오아시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친구와 둘이 오아시스에 곧장 뛰어들어서 수면에 비치는 은하수를 봤다고 했다. 같이 여행한 듯 소름끼치게 만드는 묘사는 둘째치고서라도 10대가 그렇게 모험적일 수 있다는 것,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공부하면서도 종종 그 이야기가 떠올라 어느 날 칼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너가 해준 나미비아 이야기가 종종 떠올라. 아프리카에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그걸 대비해 상상력을 기르려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읽고.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나는 지금 할 게 너무 많아.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공부 중이라 지금은 안 되고, 직업 갖고 나서도 아프리카에 갈만큼 긴 휴가 내려면 또 2~3년은 더 걸릴 거 같아. 책만 읽어도 두근두근하지만 세워놓은 계획 때문에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언젠간 꼭 가려고."
며칠 뒤 장문의 답장이 왔다. 목표에 대한 응원과 굴뚝 같은 모험심과 여의치 않은 시기에 대한 위로. 그러면서 툭하고 더한 문장. "어디서 본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Tell God of your plans, then he will laugh at you." 말문이 막혔다. 지금 당장 취업을 해서 2년 후 긴 휴가를 쓰겠다고 마음 먹는대도, 그때가서 그게 될까?그때 내가 아프면 어쩌지? 그땐 아프리카에 갈 용기가 싹 사라져 있으면 어쩌지?동시에 약간의 반발심도 일었다. 그럼 어떡하라고. 하고 있는 준비를 다 때려치고 엄마한테 돈 꿔서 여행이라도 가리?그런데, 반발을 하든말든간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공부를 이어가서 취업부터 하는 것.
왜냐?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거나, 취업을 위해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준비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인턴한 친구들 중 누구는 벌써 큰 회사에 들어갔고, 다른 누군 빠르게 방향을 틀어 아예 다른 계열의 큰 회사에 입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감, 입사년도가 벌어질수록 각자의 입지나 나눌 수 있는 대화 소재가 달라지니까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아프리카는 나중에. 취직하고, 여행비랑 연차 모아서.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 입사해 3년 반을 다녔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은, 내 몸에 안 맞았다. 어떻게 준비했는데. 애써 부정하면서 어떻게든 끼워 맞춰도 보고, 자기 최면도 걸어봤다. 너무 원했던 옷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업의 방향을 조금 틀어 이직했다. 기술적으로는 이전과 공통점이 많은 일이었다. 1년 반을 다녔다. 불면이 왔다. 12시에 자서 4시에 깨는 날이 수개월 반복됐다. 대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시점이 왔다. 초단위로 바뀌는 트렌드를 좇고, 그래서 오늘과 내일의 일이 연결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내게 쌓이는 게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잠을 되찾아야 했다. 지속적으로, 가능하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식으로 그걸 발현해야 할지는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던 시기, 나와는 완전 다른 궤도의 일을 벌이고 해오던 민기와 같은 결론에서 만났다.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고, 어떤 기술을 키워갈지 이전에. 그 앞단에서 각자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은지, 그걸 어떤 일로서 풀어낼 수 있을지를 찾는 게 먼저다. 나중에, 언젠가를 반복하면서 미뤄놨던 여행을 가야 할 때다. 한 명은 벌였던 일을 정리하고, 한 명은 회사를 나왔다.
여행의 목적은 다른 삶을 보는 것. 다른 일의 형태를 보는 것. 업이 갖는 다른 가치를 발견하는 것. 다른 말, 다른 음식, 다른 지형, 다른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은 뭘 중시하며 사는지 보는 것. 다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아마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다 보고나서도 '고로 나는 ~ 해야지'가 없을 수도 있다. 돌아가서 평범하게 원래 살던대로 다시 회사원으로 살지도 모른다. 혹은 빵을 만들어 팔지도 모른다. 동물 보호와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고, 글짓기 공부방을 열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 모든 형태가 다 가능한 옵션이라는 열린 생각, 열린 태도만 가지고 갈 수 있으면 이 미뤄온 여행은 의미 있을 것이다.
결국 칼이 인용한 문장은 참이었다. 내가 10년 전, 8년 전 세웠던, 틀어질 가능성이 없어보였던 계획은 트랙을 완전히 바꿔 나를 지금 여기로 데려왔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나미비아도, 케냐도, 탄자니아도 막상 맞닥뜨리고 너무 힘들어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혹은 더 나아가 지금보다 체력도, 용기도, 열망도 더 크고 많았던 25살에 왔어야 한다며 하등 의미 없는 한숨을 쉴 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안 올 2024년, 나와 민기의 첫 세계여행. 떠나온 지 한 달하고 5일 차, 포르투를 거쳐 오흐리드에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