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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Dec 16. 2023

집에 대한 생각 3가지

집을 회복하자 삶이 회복된 이야기



집에 대한 생각은 끝이 없어요. 너무 방대한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들기 때문인데요. 이제는 흩어진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에요. 하나씩 길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집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연재글도 '집에 대한 생각'들로 목차 구성해서 적어두었는데요. 막상 목차를 구성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이게 맞나? 내가 적고 싶었던 생각이 이게 맞나? 아닌 것 같아요. 아직은 틀을 만드는 기획 능력이 부족한데, 억지로 틀부터 만들어 놓으니 생각이 더 좁아지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래서 기획 능력이 더 올라올 때까지는 부끄러울 수 있지만 저의 생각을 거칠게 풀어헤칠 생각입니다. 읽는 분들의 유능함으로 저의 흐트러짐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봅니다.








언젠가 떠나야 할 '집'


10대 시절, 내게 '집'은 언젠가 결혼해서 떠나야 할 집이었어요. 슬프게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죠. 부모님과 사는 이 집은 그저 거쳐가는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제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랄까요. 결혼해서 꾸린 집이 정말 저의 '집'이라 생각했죠. 뭐, 소유의 개념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도 맞아요. 왜냐하면 엄마는 제게 이렇게 가르쳐주셨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건 아빠 덕분이야.

아빠에 대한 감사함을 가르쳐주셨지요. 그리고 '좋은 집'이 저를 거만하고 오만하게 만들지 않도록 강조하셨어요. 훗날 너의 능력으로 너의 것을 이루라 말씀하셨죠. 그 덕분에 전 아빠에게 욕심부리는 딸이 아니라,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할 수 있었어요. 나도 아빠처럼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에 살겠다고 말이죠.


소유적 개념 외에 정서적인 개념도 그랬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집에서 저는 '주인'이 아니었죠. 집의 규칙도, 가족의 문화도 가정 내의 대소사까지. 철저한 수동태라 생각했어요. 아마도 위로 10살 많은 언니, 15살 많은 오빠가 있었기에 더 그렇게 여겼을지도 몰라요. 집에서 저는 정말 작고 작은 존재였거든요. 소중함의 정도에서는 당연히 작지 않았지만, 어떤 발언권에 있어서는 분명 작았답니다. 막내인 저의 의견을 궁금해하거나 묻지 않으셨으니깐요. (물었어도 대답 못했을 테지만...)


결혼에 대한 로망은 딱히 없었지만, 우리 가족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집의 주도성'에 대한 로망은 분명 있었어요. 




엄마가 있는 '집'


대학교 4학년, 엄마의 임종을 지키게 됩니다. 인생의 가치관 중 아주 많은 것들이 이 기점으로 달려졌어요. 더 단단해진 것도 있고, 완전히 산산조각 난 것들도 있죠. 그만큼 저에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 같은 시간이었어요. 엄마의 부재는 단순히 '엄마'라는 역할의 부재만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없는 집'이 더 큰 공허함으로 다가왔죠.


사실 주부였던 엄마는 여유로운 삶일 줄 알았어요. 애 낳고 살다 보니 '살림'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죠. 엄마가 없는 집은 점점 온기를 잃어갔어요. 밥솥은 거의 돌아가지 않았고, 비밀번호 누를 때부터 코를 찌르던 된장찌개 냄새는 사라졌죠. 커튼은 점점 때가 앉았고, 냉장고의 못 먹는 음식들을 자주 버려야 했어요. 


예쁜 것을 사서 집안 곳곳에 생기를 부여하던 엄마가 없으니, 집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 더 이상 숨 쉬지 않았어요. 사실 이 부분은 그때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냥 '엄마'가 없는 적막함이라 생각했거든요. 제가 결혼을 하여 살림살이를 직접 살아보고서야 깨달았어요. 부지런히, 아주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집안 곳곳을 돌보는 사람의 노고를요. 그리고 그 행동 하나하나가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말이에요.


집에 꽃이 있으면 봄이 온 줄 알았어요. 대게나 송이가 식탁에 올려져 있으면 추운 가을임을 알았죠. 베란다 화분에 꽃이 피면 여름이었고, 귤 한 박스가 놓여있으면 겨울이었어요. 매 계절마다 집과 식구들을 돌보던 엄마의 사랑을 그때는 다 헤아리지 못했지요. 





저녁이 있는 '집'


여러분은 집에서 보내는 저녁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그 시간을 좋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예전에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로 가느냐보다,
하루를 마치고 어디로 가는지가 더 중요해.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란 말이 있죠. 아빠는 그것에 '퇴근 후 어디로 가느냐의 중요성'까지 말씀해 주셨어요. 돈 벌어서 다시 돈 쓰러 갈 것인지, 가족들에게 돌아와 충만한 저녁을 보낼 것인지 말이죠. 혈기왕성한 20대에는 이 말에 '아!' 하긴 했지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여전히 저녁에 밖을 배회하는 건 큰 즐거움이었거든요.


그러다 30살에 방을 꾸미게 됩니다. 10년 동안 쓴 가구를 다 팔고, 제 취향에 맞게 싹 꾸몄지요. 그때부터였어요.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된 거예요. 방이 나만의 놀이터이자, 나만의 무대가 되니 그 시간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좋다는 친구들이 이해 안 되던 극 E였던 제가! 그 말을 100% 이해하게 된 거예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언제나 유익한 것만은 아니잖아요. 에너지도 많이 소비되고,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만남들도 있고요. 그러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복불복이 없더라고요. 나를 위한 영화, 나를 위한 저녁, 나를 위한 책 읽기, 나를 위한 일기 쓰기까지. 은은한 조명 아래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정말 신기한 것 알려드릴까요?


집에 대한 즐거움을 회복한 저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도 10번 만난 남자와 말이에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해요. '집'을 회복하자 '나'를 회복했고, 그때 비로소 좋은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이죠. 집이라는 공간은 참 특별해요. 나를 담아내는 곳이자, 내가 표현되는 곳이거든요. 그 공간을 삭막하게만 보낼 때와, 그 작은 방 하나에 온갖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의 저는 완전히 달랐어요. 


이것은 기억해 주세요.


집에 대한 회복은 삶에 대한 회복이에요. 제가 그걸 경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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