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 by you Dec 29. 2016

끓는 차가움

마지막 편지

십이월 시린 아침의 숨결이 살갗에 닿음을 느낄 때, 새하얀 눈이 촘촘히 직조된 옷 위에 얹힌다. 하늘이 품에 가득 채워냈던 냉기를 저 아득한 땅에 양도했고, 영하의 대기를 유영하던 눈이 옷에 얹혀진 것이다.


끓는 차가움-


결정체가 된 냉기가 온열을 맞이하고,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이내 흐르고 녹아내린다. 실오라기에 흡수되어 형체라는 것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차가움은 끓어 사라지지만, 그 형체의 모습이 간직한 단 하나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나는 안다.

`

여기 무엇보다 새하얀 꽃을 보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시린 겨울, 유난히 커보이는 눈꽃에 두 눈을 사로잡히는 시간이다. 육중한 무게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헤엄친 눈이, 끓는 차가움 속에서 냉꽃을 피워내는 시간은 고작 이초 남짓 밖에 안될지라도.

`

각각의 눈은 저만의 꽃술과 저만의 꽃잎으로, 맵시를 다듬어낸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듯 자신의 맵시를 자아낸다. 하나의 눈이 옷에 닿기 직전의 순간들은 각자의 형상을 소개한다.

`

숯하게 녹아내리는 눈꽃들을 보면서도,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그것의 형상과 느낌은 단 하나, 유일하게 뇌의 한켠에서 뚜렷한 모습이 있다. 왜인지 고결하게 날카로우며, 유려하게 투명한 영문이 궁금하다.

`

매순간 서로 다른 눈의 모습이 시야의 광맥 위로 기록되고, 그 형세는 각기 다르지만, 오직 잔상의 일례만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이미 녹아버린 눈꽃의 비음을 들으려 하지말라.

갖가지 아름다움의 새하얀 찰나를 들춰 내지말라.

번뜩이는 백색의 섬광을 쫓으려 하지말라.


너와 나의 기억의 구석에는 순백이 지닌 어떤 형태가, 고결하게 날카롭고, 유려하게 투명하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서로를 추억하는 것은 수백, 수천 백설의 봉오리를 살피는 것과 같다. 각기 다른 형태와 모습을 지녀도 알 수 없이 빠르게 녹아버린다. 대신에, 서로의 기억을 추억하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시간과 공간, 감정과 사상들까지 모두, 그 아름다움만을.

우리가 기억하는 끓는 차가움만을.

매거진의 이전글 자문의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