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철자도 몰랐던 마케터의 우당탕탕 서비스 개편 수난시대
내 인생에 평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건 다이어트뿐만이 아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세주만큼이나 역설적인, 끝이 새로운 시작인 그것. 바로 'UIUX/서비스개편작업'
그 머나먼 여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시련_ 9일 만에 메인과 기업소개 페이지를 개편하시오 (ps. 기획자 없음. 디자이너도 없음)
나는 광고홍보학을 전공으로 하고 콘텐츠 제작회사에서 인턴을 했으며 서비스 기획과 UIUX 디자인과는 거리가 인천과 포항만큼이나 머나먼 사람이다. 그러나 엄마 말을 안 듣고 스타트업에 발을 들인 탓일까, 그 모든 것은 나의 임무가 되었다. 얼마나 상황이 열악했냐면 마케팅팀은 꼴랑 신입인 나 한 명이었고 사수도 없었으며 디자이너는 더더욱 없었다. 그 말은 즉슨 UIUX는 개뿔도 모르지만 기획과 디자인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고 개발자 한 명과 머리를 싸매며 퍼블리싱, 개발까지 완성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리둥절할 시간도 없이 레퍼런스 조사 2일, 기획 1일, 디자인 3일, 퍼블리싱 및 개발 3일 = 도합 9일의 시간이 흘러갔고 뭔가.. 완성되긴... 완성이 됐다. 됐는데..
이때의 대표님의 요구는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다른 구직사이트들처럼 메인에 투머치한 일자리정보만 가득차서 뭘 선택해야할지 모르는 사이트는 싫어요.'
나의 생각도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일자리 정보가 빠져서 공간이 비는 곳에 우리 서비스의 이용방법과 장점으로 채워야겠다!'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바로 고객에 대한 이해.
우리 고객은 구직자·구인기업 모두 중장년층 남성이 대다수이므로 메인에 들어오자마자 원하는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어야 하고 서비스에 대한 구구절절한 자랑 글보다는 복잡한 퍼널 없이 원하는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쉽고 간편한 서비스가 적합하다.
근데 제가 그걸 알았겠습니까 여러분? (뻔뻔) 이렇게 된 이상 거 죄송하게 됐수다...하고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지만 저는 이제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어엿한 으른인걸요...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뜯어고쳐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련_ 안녕 내 이름은 하이브리드, 이런 건 처음이지?
생각보다 굉장히 조잡스러워진 웹 메인에 당황하며 모바일앱을 켰는데, 앱 화면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웹 화면에 맞춰놓은 이미지가 그대로 앱 화면이 되면서 이미지가 잘리고 배열이 엉망이 되고 난리가 난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개발자에게 호다다닥 달려가 말했다.
"개발자님, 저희 모바일앱 화면이 이상해요! 아직 퍼블리싱 작업 덜 하신 것 맞죠?"
"민지 님 저희 하이브리드잖아요! 웹 화면이 모바일에 맞춰서 이미 적용된 거예요!"
"(동공지진)....예?...하이브리드요?...그게뭔데요..."
정말 개발이나 퍼블리싱은 1도 몰랐던 나는 '웹 화면 크기가 모바일에 맞춰서 적용이 된다'는 말이 웹 화면만 디자인해놓으면 알아서 예쁘게 모바일 사이즈로 퍼블리싱이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이었으면 애초에 따로 퍼블리싱이 필요한 부분은 각 화면에 최적화된 디자인을 각각 만들어 전달했을 테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말이 청천벽력이었다. 그렇게 조져진(?) 모바일 앱을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나는 개발자를 들들 볶았고 진땀 나는 나의 첫 번째 개편이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서비스 재개편을 앞둔 나는 흡사 1,000일의 고행을 마치고 전쟁에 나선 장군과도 같았는데, 고난과 역경아 올 테면 와봐라는 기개로 1부터 100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1명이던 개발자가 2명이 됐다는 것 외에는 여전히 암흑 같은 상황이었고 책으로만 배운 수준인 UIUX 지식은 그래 봤자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이제 나와 서비스 기획·디자인과의 거리는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단 가까운 정도랄까...(1도 근본이 없단 소리)
디자인은 외주에 맡기고 기획에 최대한 집중하기로 했으나 누구 하나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다른 서비스 레퍼런스를 쥐 잡듯 뒤지며 내 나름의 업무 체계를 만들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게 실제 서비스 기획자의 업무 루트였다는 게 소름.... 트롯계에 영재 유산슬이 있다면 나는 바로 기획계의 영재가 아닐까? (먼산)
2.0 버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과 구직자가 메인에 들어왔을 때 그다음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1박 2일간 중장년 기술자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캠프를 운영할 때 그분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봤다. 앱을 누르고 로그인 창은 한 번에 찾는지 이력서를 작성할 때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폈고 거기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바로 기업 메인과 개인 메인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팝업창(ex. 설명을 위한)을 최소화해서 이력서 등록이나 일자리 찾기 같은 주요 기능을 눈에 보이는 메인화면에 둬야 한다는 것! (스크롤 없이 바로 볼 수 있도록 상단에 두는 것이 중요)
유저 시나리오 > 플로우 차트 > 와이어프레임 > 기능 명세서
사실 3.0 버전을 만들 때만 해도 플로우 차트라던지 와이어프레임 같은 단어는 1도 몰랐다. 지나고 보니 이게 서비스 기획의 정석이었다니...(나 자신 칭찬해)
그 덕분에 사용성은 훨씬 편해졌지만 사실 유저 테스트 후 수정해야 할 부분도 많았고 2 달이라는 짧은 개편 시간은 기획서에 있던 내용들을 다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일까, 개발팀의'안돼요'와 나의'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니'의 지독한 눈치게임은 그 후로도 계속되는데...
두 달 동안 웹/앱 60p를 개편한 4.0 버전의 운명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