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조우한 썰
지난해 LA에 오면서 고등학교 동창들 몇몇을 조우하게 됐다.
70여 명 남짓한 동창들 중 나 포함 다섯 명이, 이 넓은 미국 땅 안에서도 LA에 모여 사는 셈인데 심지어 한국에 있는 학교라면? 거짓말이래도 믿을 만큼 낮은 확률, 엄청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5년 여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라고 부르기도 뭣한 동창도 있었다. “와, 너 정말 변한 게 없이 그대로구나”라는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 모르는 사람을 ‘동창’이라는 명목으로 만나고, “가족들이랑 미국에 와서 살게 됐는데 잘 부탁해” 말하는 게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내향인’에게는 참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애가 둘이나 되는 나와는 달리, 모임의 다른 친구들은 싱글 혹은 아이가 없는 커플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안 친했고, 20년 간 만난 적도 없으며, 현재 상태(status)도 너무 다른 친구들, 게다가 외향적이지도, 낯선 이에게 곁을 잘 내주지도 않는 나. 애초에 이런 이유들로 난 이 관계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1년이 흘렀고,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친구들 개개인에게도,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도.
한 친구는 결혼을 했고, 다른 친구에게는 기다리던 2세가 찾아왔다. 여자 친구들과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브런치를 먹기도 하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여행도 두어 차례 함께 다녀왔다. 나의 친구들은 다른 가족이 없는 이곳에서 내 아이들의 든든한 이모, 삼촌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친구들,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배운다.
사실 이 친구들을 만난 고등학교는 어려운 입시를 치르고 들어갔지만 결국 자퇴라는 결정을 해야 했던 애증의 대상이었다. 굳이 후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지금은 꽤 감사한 마음이다.
더불어 사람 인연이라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신비한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스쳐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인연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보다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에 목숨을 건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다시 만났을 때 얼굴 붉힐 일은 없도록, 모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존중을 가지고 품위 있게 대하려 한다.
(친구들이 볼 리는 없지만) 다정한 라라랜드 친구들아, 올 한 해도 고마웠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