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 키우기: 스포츠
“넌 어떤 스포츠를 해(What sports do you play)?”
20여 년 전 어학연수를 하던 중 버디(buddy)에게 받은 첫 질문이었다. 가뜩이나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든 상태에서 받은 이 질문은 그야말로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스포츠를 하냐고? 축구, 농구, 이런 거 말이야? 갓 스무 살을 지난 그때까지 내 인생에 스포츠는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의 학생들, 특히 여자 학생들은 다 그랬다. 난 중학교 체육 시간 이후 숨쉬기 운동 외에는 해본 일이 없는 비루한 몸뚱이의 소유자였다.
그러고 나서 미국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스포츠를 경험하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본인의 주 종목을 선택해 선수로 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목마다 시즌이 있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스포츠를 하는 친구들도 많고 말이다.
왠지 부끄럽고, 많이 부러웠다.
그게 다였다. 2022년 겨울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미국 땅을 밟기 전까지 나는 ‘스포츠’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네 살 반 다민이는 요새 세 가지 운동을 한다: 축구, 짐네스틱, 수영
프리스쿨 친구들과 주 1회 방과 후 축구를 시작한 게 벌써 반년이 넘었고, 발레나 댄스를 두고 고민하다가 선택한 짐네스틱도 만 4개월째 하고 있으며, 지난주부터는 LA 주민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수영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면 가끔, 아니 사실 자주 ‘작은 몸뚱이에 어쩜 저렇게 많은 에너지가 있지? 왜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지?’ 생각하곤 한다. 운동은 어른이 감당하기 벅찬 이 들끓는 에너지를 가장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또한 아이가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는 기쁨, 친구들과 함께 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공부가 잘 안 될 때,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책상에 앉아서 머리만 쥐어뜯거나 술, 담배를 찾는 게 아니라 농구 한 게임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샤워하면서 재충전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몸과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나는 사회 초년생일 때 우연히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주 조금 알게 됐지만, 본인의 몸(체형)과 움직임(자세, 생활 습관)을 안다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덜 아프고 덜 다치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다행히 다민이는 힘들다기 보단 “나는 운동을 세 개나 해. 근육도 많아지고 쑥쑥 크겠지?”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매 수업 코치의 디렉션을 잘 따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셔틀도 없는 미국 땅에서 주야장천 라이드를 하고 있는 나에게도 나름의 즐거움은 있다. 무엇보다도 짧고 통통한 몸으로 스트레칭하고 구르고 점프하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귀엽다. 엄마 미소를 장착한 채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시추에이션이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주원이의 피아노 레슨>에서도 느꼈던 가르치는 방식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막 두 번의 수업을 마친 수영 레슨의 형태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매달려 발차기만 죽어라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수영 수업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코치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 수업의 목표는 아이를 물과 친숙하게 만드는 거구나’ 알게 된 수업에서는 아이를 물로 뛰어들게 하고 얼굴을 물에 담그게 하고 10초 동안 누워서 둥둥 떠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물이 코로 귀로 눈으로 들어가고 물을 먹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물을 친숙하게 느끼게 된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게만(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몸치인 엄마보다는 몸을 잘 쓰는 사람으로)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