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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Jun 15. 2023

나의 언어 연대기(3)

장폴 사르트르 [말]






언어-3. 성공

지나간 사랑을 잊는 최의 방법,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13년 함께 짝이 없으니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짧은 솔로기간을 끝내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한다. 그녀도 동갑내기였다. 자연스레 지난 이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혼기가 찬 그녀 또한 내게서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떠날 것이기에. 또다시 사랑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성공해야 했다. 나를 증명해야 했다. 직장은 다니기 싫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조직 생활을 할만한 성격도 아니다. 초라한 현실과 거대한 욕망을 메울 방법은 한 가지. 사업을 계획했다. 각종 성공학으로 정신무장했다. 공책 한쪽을 가득 채우는 버킷리스트를 1년 동안 매일 적으며 성공의 주문을 걸었다. 나의 언어를 돈-성공으로 가득 채웠다.

자본, 기술,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여자친구와 합심해 돈을 모아 같이 뛰어들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반짝한 아이디어처럼 사업은 반짝 성공으로 끝났다. 무엇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패기와 열정만으론 어림없었다. 한계는 금방 도래했다.

2년 만에 사업을 접고 빚을 짊어졌다. 실패의 좌절을 추스를 겨를 없이 생계에 뛰어들었다. 삶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전환됐다. 또 다른 방황이 시작됐다. 나를 허락하는 곳을 찾아 전전했다. 영혼 없이 3년여간 몇 군데의 직장을 옮겨 다녔다. 한 직장을 1년 이상 다니지 못했다. 우리에 갇힌 들개는 침울했다. 그즈음 두 번째 사랑에도 균열이 시작됐다. 실패에 움추러든 남자를 보며 마음이 변하는 건 당연할 터. 또다시 고통스럽게 사랑을 떠나보낸다. 사업의 실패. 사랑의 실패. 나는 인생이 실패한 듯 어쩔 줄 몰랐다.

그러던 중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어머니께서 장사를 제안했다. 자신 있었다.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족발집을 차렸다. 가게는 빨리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새 출발의 열정이 사그라들고,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점점 무기력하게 했다. 돈을 번다는 건, 내겐 생계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채울 수 없는 공허와 갈증은 증폭다. 결과적으로 장사는 내가 해서는 안될 불구덩이로 뛰어든 꼴이었다. 밤장사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체력고갈로 결국 병이 났다. 얼굴 반쪽이 마비됐다. 극심한 신경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멈추라는 비루한 몸뚱이의 외침에 순응해야 했다. 치료와 요양에 들어갔다. 장사를 접고 나는 또다시 심연을 향했다.

해내고 말 거란 암시를 걸고 가열하게 내달린 그것은 지옥행 열차였다. 돈-성공은 나의 언어가 아니었다. 삶의 어디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없었다. 욕망이 언어를 형성하듯 그릇된 욕망은 그릇된 언어로 나를 파괴했다. 맞지 않는 언어로 나를 채워가며 몸과 영혼은 피폐해졌다. 현실의 괴로움을 보상받기 위해 쾌락을 갈구했고, 책과 교양은 사치다. 삶에서 철학적 가능성은 완전히 사장(死藏)됐다.


- 4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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