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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Aug 23. 2022

최후의 인간,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구속과 얽매임에서 벗어난 절대 자유의 경지란 있는 것일까. 모두가 국가와 사회에 속하고, 누군가와 관계 맺으며, 지배와 피지배 속에 삶을 구성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절대 자유란 없다. 자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으로만 존재한다. 억압에서 벗어난 주체가 해방감에 젖는 그 순간이 자유다. 조르바 또한 자유를 얻기 위해, 얽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을 등지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먹고, 즐기고, 일하고,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조르바에게 자유를 느끼는 걸까? 조르바의 자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는 동시에, 반대 속성인 소유를 갈구하는 이율배반적 존재다. 조르바는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다. 무엇도 소유하지 않기에,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있다. 사랑 또한 그렇다. 상대를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소유함이 없는 욕망은 모든 분별을 초월한다. 품어야 할 여자는 어떠한 형상을 가졌던, 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조르바의 에로스는 미추(美醜), 노소(老少)를 뛰어넘어 발화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것. 최상의 행복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속삭일 때? 그건 서로를 탐닉하는 아주 짧은 순간의 행복일 뿐.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할 때, 최상의 행복을 구가한다. 그보다 더한 충만함이 있을까? 조르바의 사랑이 그러하다. 오르탕스 부인은 조르바를 통해 활짝 열린다. 조르바의 품에서 함장들을 쥐락펴락했던 시절의 생명력을 다시 내뿜는다. 세이렌으로 환생한 그녀에게 조르바는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지 않는다. 오직 에로스의 충만함 속에, 그녀 자신에게 이르길 바랠 뿐.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를 내 안에 가두고 묶어두려 한다.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다. 소유와 집착이 들어설 때, 에로스의 충만함은 소거된다. 신비와 존중은 사라진 채, 서로를 옥죄는 감옥으로의 초대. 소유하지 않는 사랑은 에로스의 충만한 에너지로 상대의 가능성을 꽃피운다. 둘만의 새장이 아닌,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치는 사랑. 모든 관념과 편견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조르바의 사랑은 자비심이다. 이것이 붓다 조르바.


조르바에게 세상은 늘 기적이다. 무엇도 소유하지 않으니,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과 같은 호기심, 순수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소유하지 않으니, 그것과 조우하는 순간. 그것이 되려 한다. 도자, 광산, 춤, 산투르. 그것을 살아버리는 것. 순간에 몰입하여 그것과 합일되는 무아지경(無我之境),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태. 새롭게 열린 시공간에 내가 없어지고, 세계가 지워지는 순간. 자유의 황홀경! 소유하지 않음으로 그것과 더 큰 합일의 경지. 내일이 없는 몰입. 내일이 없는 사랑. 내일이 없는 혼신. 과거도 미래도 없이 지금을 온전히 사는 것. 암컷도 그렇게 사랑한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도 그렇게 몰입한다. 채굴도 그렇게 혼신을 다 한다. 무엇도 지배할 수 있는 신의 경지, 이것이 제우스 조르바.


소유와 집착은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나약함은 편안함을 추종한다. 삶이 편안한가? 그것은 철저히 종속된 노예의 증거. 자유는 쟁취다. 나를 무력화하는 것들과의 처절한 투쟁. 상처, 불안, 고독, 공포는 자유를 향한 통과의례. 용기만이 종속의 껍질을 뚫고 주체에 이르게 한다. 물레질을 방해하는 손가락을 자르는 용기. 조국과 신, 이념과 표상으로부터 탈주하는 용기. 쾌락과 금욕의 그물을 찢어발기는 용기. 모든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단독자로 우뚝 선 존재. 무엇도 조르바를 지배할 수 없다. 그를 움직이는 건 오직 그 안에 끓어오르는 생의 충동. 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이것이 최후의 인간 조르바.


마음 한번 먹었으면 밀고 나가라, 후회도 주저도 말고.
고삐는 젊음에게 주어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에게.
네가 너를 잃지 않는 순간은 네가 이기는 순간!
.....
용기! 빌어먹을! 모험! 올 테면 오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내가 찾던 광맥은 바로 이것이구나! 더 무엇이 필요하랴...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61~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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