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배우는 것,
캣 타워에서 창 밖을 바라보던 미미는 내가 다가가는 인기척을 느끼면 어김없이 창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앉았던 자세를 기울여 눕는다. 온몸으로 놀이가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양이에게 창은 TV와도 같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 재밌는 TV에서 눈을 떼고 날 바라봐주는 것이다.
나는 TV에서 광고가 나오면 눈을 못 떼던 아이였다. 엄마가 밥 먹자는 말에도 고개 하나 돌리지 않고 TV 속에 빠져있었다. 성인이 되면서도 그 버릇은 버릴 수 없었고, 결국 TV 없이 살기로 마음먹게 된다. 하지만 TV는 요즘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다. 집에는 TV가 없지만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TV를 대체하고도 남을 휴대폰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TV 대신 내 눈 앞에는 휴대폰이 항상 존재하게 되었다. 짝꿍은 스스로가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며 3G폰에서 4G로 넘어가는 세상의 흐름을 앞에 두고, 뒤돌아 2G 폰을 개통했다.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여진 그의 휴대폰은 6년째 그의 바지 주머니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폰의 뒤에 붙은 숫자가 3에서 11까지 높아지고, 가격도 그만큼 올라가는 동안 그의 2G 폰은 버려지지 않고 그와 함께였다. 그 사이 나는 블랙베리와 아이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도 역행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을 때는 휴대폰 좀 그만 들여다보라는 잔소리를 매번 들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 좀 그만 들여다보라는 잔소리를 대신해 휴대폰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눈을 감고, 그르렁거렸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몸짓으로 내게 표현했다.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면 눈치라곤 없는 사람처럼 미미를 몸짓을 모른척했다. 그러면 미미는 이빨을 세워서 내 손을 앙-하고 무는데, 아프지 않게 살짝 무는 시늉만 해서 기어코 나를 일으킨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누가 내게 물으면 애교 많은 고양이를 집에 들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물론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미미는 정말이지 애교가 많아서 미미의 발자국마다 애교가 뚝뚝 묻어있다. 외출 후, 집으로 들어올 때 미미의 애교는 아침에 일어난 나를 알아챘을 때만큼 격정적이다. 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나를 보려고 미미는 캣타워가 위치한 방의 창문 쪽으로 목을 빼꼼히 내밀어 올려다본다.
이 모습은 내가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미의 귀에 현관문을 여는 소리를 들리면, 내가 집에 왔음을 더욱 확신하고는 열심히 달려 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좌 우 왔다 갔다 발걸음 하는 미미가 문틈 사이로 비쳐서 웃음이 새고 만다. 문이 열리면 내게 쉽게 안길 수 있도록 문 옆에 있는 책상으로 미미가 뛰어오른다. 가방을 내려놓는 나를 향해 미미는 애처롭게 우는데, 이때 나는 몸을 조금 숙여 미미가 내 품에 안길 수 있게 돕는다. 미미는 허겁지겁 내 어깨를 잡고, 나는 미미의 엉덩이를 받쳐 든다.
나는 미미를 한쪽 어깨에 기대게 하여 안고서는 이 방, 저 방 움직이며 미미에게 말을 건다. “밥 먹었어?”, “물 먹었어?”, “잠은 많이 잔 거야?”, “다른 고양이들이랑 새가 마당에 다녀갔니?” 한참을 미미의 붕붕 대는 꼬리와 비비적거림을 느낀 후에 부엌으로 가서 내려준 뒤, 간식을 준다. 미미는 간식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도 나를 졸졸 쫓아다닌다. 혼자 있을 때는 창 밖만 보던 미미는 내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곁에서 누워있거나 식빵을 굽고 앉아있는다. 돌아보면 항상 미미는 내 눈 닿는 곳에 있다.
미미를 보며 생각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위해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마주 앉아 있는 사람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그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나를 보고 있는 미미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모든 순간 진심을 담아 그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