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이웃
날이 더워지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었으나 집엔 먹을 것이 없었다. 냉장고는 가득 차서 힘들다고 울고 있는데, 왜 사람 입에 들어갈 음식이 없는지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짝꿍과 나는 ‘어차피 끈적한 몸에 땀 좀 더 흘리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쌀 식빵을 사러 나섰다. 냉장고에는 잼 종류와 케첩, 머스터드 따위는 있었다. 그렇다. 냉장고에는 주재료 없이 부재료가 한가득이었다.
계획했던 산책처럼 짝꿍과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복으로 환복하고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열고 좁은 골목 하나를 나서면 넓은 골목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방송국 사람들을 만났다. 방송국에 취직하면 다들 검은 옷만 입어야 하는 법칙이라도 그들 사이에 있는지, 하나 같이 검은 모자와 검은 티, 검은 바지를 입고 있어서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다. 떨어뜨린 비스킷 위에 모인 개미떼처럼 우리 집 담 너머 옆 집에 스태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맞춰 마스크도 검은색으로 착용한 그들은 분주해 보였다.
당장의 호기심보다는 배고픔이 앞선 우리는 서둘러 시장으로 향했다. 식빵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엔 큰 마음먹고 수박도 한 덩이 샀다. 수박은 정말이지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과일이었다. 수박껍데기를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여 배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박을 보관할 대형 반찬통도 필요하며,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 놓는 과정에서 방심하다가 온 부엌을 끈적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햇볕에 일광욕 중인 수박을 통통 두드려보니 청명한 소리가 나서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샀다. 저녁에 샤워하고 한 조각 날름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면서.
수박을 들고 짝꿍과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와 식빵을 구워 잼을 발라먹었다. 기분 좋게 배를 통통 두드리며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는데, 담 넘어 집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담 넘어 있는 흰 집은 아기를 키우던 부부가 살던 집이었다. 담 하나만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사이인데, 얼굴을 본 적 없었다. 하지만 단서는 있었다. 아기가 새벽에 울면 깨어나 어르고 달래는 부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소리로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담 너머에 사는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가끔 주말에는 아이를 낳은 엄마의 엄마 되는 사람이 와서 아이와 함께 노는 소리도 들렸다. 젊은 부부의 목소리가 아닌 노부인의 목소리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는 아기의 웃음소리로 짐작한 상상이다. 내 머릿속 상상일 뿐이니 실제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이사를 떠난 것인지 한동안은 아이의 울음소리도,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던 집인데, 집 밖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TV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봐도 기계를 거치지 않은 목소리였다.
짝꿍의 작은 두 눈이 동그래지더니, “노홍철 목소리잖아?”라고 했다. 세상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무한도전을 보는 자와 보지 않는 자, 짝꿍과 나는 수년간 무한도전을 보는 자였고, 무한도전에 노홍철이 있을 때도, 노홍철이 없을 때에도 무한도전을 봤다. 우리의 어떤 시절에는 노홍철의 목소리가 매주 함께였다. 그의 목소리를 인지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노홍철의 목소리를 들었고, 발코니와 화장실 등 이것저것 방을 소개하는 것으로 추측컨데 ’ 구해줘, 홈즈’를 촬영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오후 출근자인 짝꿍과 나는 집을 나서며 2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노홍철과 눈이 마주쳤고, 짝꿍은 아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덩달아 나도 같이 인사했고, 노홍철도 우리에게 두 손 흔들며 인사했다. 노홍철과 우리는 마치 다정한 이웃 같았다. 사실 우리는 그 집에 살던 사람들과는 한 번도 인사한 적 없었다. 실제로는 창문을 열다가 이웃과 눈이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 닫기 바빴었으니까.
짝꿍이 내게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를 사람들이 왜 보는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보지 않는 자였기에 왜 보는지 알 수 없었고, 대답하지 못했다. 짝꿍은 “실제로는 1억 도 못 만지는 우리가 저 집 3억밖에 안 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나는 ‘구해줘 홈즈’를 보지 않는 자 주제에 그 말을 듣고 공감하여 크게 웃어버렸다. 그 날은 웃었지만 지금은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에게 돈이 없다면 TV 속에 나오는 집들은 영원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겠지?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집과 우리가 거쳐온 집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거쳐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엔 우리에겐 미미가 생겼다. 미미가 누울 침대와 이불은 지금의 집도 충분하지만 미미가 바라볼 창 밖 세상은 지금보다 더 다채로워져야 한다. 지금 집은 계약이 1년 반이나 남았지만 그 계약 너머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 걱정에는 미미의 몫이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미미와 나 그리고 짝꿍까지, 세 생명체 모두 마음에 들어야 하는 집이어야 한다.
그나저나 담 넘어 그 흰 집은 매매가가 얼마일까. 식탁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방송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