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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음 Jul 18. 2020

고양이가 잠든 얼굴 뒤로

작고 소중한 수국

마당에서 제일 좋아하는 천리향, 사진에 향을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지금 짝꿍과 살고 있는 주택과의 인연은 2년 하고 1개월째다. 첫 해 마당에 꽃 피운 두 그루의 천리향의 향에 취해 나는 천리향과 사랑에 빠졌다. 천리향의 이름의 뜻은 짙은 향이 천리까지 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고 했다. 그 짙은 향은 향수에도 많이 쓰인다고 들었다. 가히 그럴만한 꽃이었다. 나의 큰 사랑에 부담을 느꼈는지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크게 자란 천리향 한 그루가 죽었다. 좁은 마당에서 나무를 키우려면 가슴 아파도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그걸 짝꿍과 나는 몰랐다. 뿌리가 썩었는지 죽은 빛의 천리향은 흙에서 쉽게 뽑혔다. 마음은 아팠지만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천리향을 보내고 빈자리를 빨리 다른 식물로 메꾸고 싶은 마음에 금정 화훼단지를 방문했다. 수많은 꽃과 나무를 잔뜩 구경할 수 있었다. 그중 내 발목을 잡아 끈 것은 ‘수국'이었다. 작은 수국 화분 하나와 만리향 한 그루를 사서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짝꿍은 비를 쫄딱 맞으며 수국과 만리향을 천리향이 있던 빈자리에 심었다. 비 오는 날 식물을 심으면 식물에게 더욱 좋다고 들었다. 천리향이 죽은 자리에서 만리향과 수국 모두 깊게 뿌리내리길 간절하게 빌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큰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도 매일 보는 엄마의 키는 줄어드는 걸 모르는 것처럼  수국은 매일 보니 자라는 줄 몰랐다. 더구나 심은지 일 년이 지나도 수국은 꽃피울 줄 몰랐다. 꽃이 피어있지 않으니 그저 깻잎 같았다. 캣타워에서 마당을 감시하는 줄 알았던 미미가 제 본분을 잃고-사실 고양이의 본분은 귀여움인 듯-곯아떨어져 자고 있을 때, 웃으며 창 밖을 바라보니 깻잎 같던 수국에 꽃봉오리가 조그맣게 생겼다. 매일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니 조금씩 색이 진해졌다. 파란 수국이 어느 날 작게 피었다. 내가 아는 수국은 꽃송이가 매우 컸다. 마당에 꽃 피운 수국은 내가 알던 수국이 아니었다. “왜 우리 집 수국만 이렇게 작고 소중해? 왜 다른 집 수국은 크고 아름다워? 왜? 왜?”하는 질문에 친구들 모두 막 피기 시작했을 때 모습일 뿐이니 걱정 말라며, 너의 수국은 더 크고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나를 다독여줬다. 친구들 모두 몰랐다. 우리 집 수국은 그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집 뒤편 산 길을 따라 산책한 적이 있다. 본격 산행이 시작되기 전 작은 절이 있는데, 절에서 생활하는 한 스님이 수국을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그 수국이 꽃피우는 것을 보고 싶어 한 동안은 공원이 아닌 산길로 산책을 갔다. 그곳의 수국은 내 키만 했고, 기다리던 수국이 꽃피우니 그 꽃송이는 내 얼굴만 했다. 산책을 하며 훔쳐본 스님은 화분에서 작게 키우다가 조금 더 커지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게 수국을 옮겨 심는 과정을 반복했다. 수국이 성장하는 과정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만큼 더디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오늘 아침엔 캣타워에서 세상모르게 뻗어있는 미미의 뒤통수를 살짝 어루만지며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수국을 쳐다봤다. 꽃은 이미 지는 중이었다. 



 미미야. 내년 이맘때는 조금은 더 커있을 수국 꽃송이를 기대해도 될까? 우리 집 수국도 나중에는 다른 집 수국 못지않게 더 크고 아름다울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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